우량 회사채가 발행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열기가 이달 들어 눈에 띄게 식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화그룹의 지주회사인 (주)한화는 17일 발행 예정인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를 최근 연 1.85%(잠정치)로 결정했다. 시장 평가금리를 뜻하는 ‘민간채권평가사 평가금리(개별민평금리)’보다 0.15%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주)한화는 국고채금리가 사상 최저점을 기록한 지난달 하순부터 회사채 발행 준비에 들어갔지만, 예상보다 많은 이자비용을 물게 됐다. 기관이 시장금리의 상승(채권값 하락)을 우려해 수요 예측 때 높은 금리를 써내는 등 소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다.
앞서 수요예측을 한 자동차 엔진용 부품업체인 현대케피코와 액화석유가스(LPG) 판매업체인 E1도 마찬가지였다. 민평금리보다 각각 0.01%포인트(현대케피코)와 0.13%포인트(E1) 높은 금리로 지난 10일 똑같이 5년 만기 회사채 발행을 완료했다. 이달 들어 회사채 금리를 확정한 우량 기업(신용등급 A급 이상) 5곳 중 3곳이 예상보다 다소 높은 이자비용을 내게 된 셈이다. 지난 상반기 회사채 발행에 나선 140개사 중 90% 이상이 민평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발행에 성공한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기관의 소극적인 수요예측 참여는 시장금리가 상승 전환 조짐을 나타낸 지난달 말부터 두드러졌다. 한 자산운용사의 회사채 펀드 매니저는 “금리 하락(가격 상승)만 내다보고 지난해 봄부터 회사채 매수에 뛰어들었던 투자자 중 다수가 최근 회사채 투자에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19일 연중 최저인 연 1.09%를 기록한 뒤 최근 1.26%까지 반등했다. 작년 3월 최고 연 2.3%대에서 1년 반 가까이 이어진 가파른 하락 추세가 잠시 주춤하는 모양새다.
예상보다 빠른 기업의 실적 악화세도 투자자들의 회사채 매수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1% 급감했다.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해 재무 체력이 나빠지면, 회사채 값이 하락(유통금리 상승)해 평가손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의 회사채 발행 담당자는 “기업 실적 악화 추세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회사채 매수에만 몰두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관이 최근 늘고 있다”며 “유통시장에서도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로 매수 수요가 크게 꺾였다”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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