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포럼] 미국 청문회 vs 한국 청문회

입력 2019-09-19 17:54   수정 2019-09-20 00:11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한 여야 간 사생결단의 극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하는 산업 혁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역량 제고 문제도 국회에서 더 격렬하게 토론하고 언론이 이슈화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학기술 한 분야에 인생을 바친 학자의 안목 좁은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정치권과 정부는 이에 대한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출장으로 미국에 간 지난 7월 중순, 미국도 16~17일 이틀간 청문회 열기로 뜨거웠다. 미 전역의 TV는 페이스북이 발표한 암호화폐 ‘리브라’에 대한 상원 은행위원회,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의 청문회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 달아올랐다. 청문회에선 리브라가 안고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오고 갔다.

한 상원의원은 지난해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언급하며 리브라 프로젝트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 임원 데이비드 마커스가 “리브라는 기존 시스템보다 더 엄격한 통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항변했다. 화폐의 디지털화와 이에 따른 변화 양상에 대한 상·하원 의원과 암호화폐 옹호론자 간 토론이 드디어 불붙었고, 그 상황이 미 전역에 생중계됐다.

필자가 부러웠던 건 암호화폐 같은 어쩌면 정보기술(IT)이나 산업적인 문제인 것 같은 주제에 대해 의회가 이틀이란 시간을 할애해 청문회를 열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미국의 의회 문화였다. 우리 국회는 최근 수년간 과학기술 문제나 산업혁신 문제를 청문회까지 열면서 진지하게 토론한 적이 있었나. 몇 번 있었다 하더라도 리브라 청문회처럼 국가적인 관심 아래 언론이 보도하고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과학기술 혁신의 시대를 맞고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 혁신은 산업의 급격한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글로벌 경제와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런 변혁의 시대를 맞아 우리가 어떤 정책과 전략을 가져가느냐 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 정치권은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야 하고, 미래를 위해 변화에 따른 고통을 분담하자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국회는 4차 산업혁명의 데이터산업 활성화와 개인정보 보호의 충돌 문제, 택시 분야 공유경제와 일자리 갈등 문제, 금융권의 규제와 핀테크산업 활성화 문제, 화폐의 디지털화 문제 등에 관해 얘기는 하고 있지만 무엇 하나 시원한 개선책이나 혁신안을 내놓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정부도 과학기술과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외치기는 하지만 과연 이를 국가 명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있나.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위원회를 주관해 부처 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내놨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최근 불거진 한·일 갈등으로 인해 갑자기 부품·소재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부품·소재 기술 육성 로드맵이 발표되고, ‘부품·소재 어벤저스’를 구성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한·일 갈등이 해소되면 조용히 사라질 구호성 정책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산업의 기초가 되는 원천기술 개발이나 인력 양성은 2~3년의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보면 1, 2차 산업혁명의 변화 흐름을 받아들이고 시장을 개방한 나라들이 지금의 주요 7개국(G7)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처럼 말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구호성으로 외치기만 하면서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조사 및 정보 수집 능력이 현실 산업의 문제, 즉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 개발 문제와 한국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문제에도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내부 일로 서로 치고받는 중에도 경쟁국들은 변화와 기술적 혁신을 가속화하면서 호시탐탐 우리 시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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