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5%룰 완화, 기업만 숨 막힌다

입력 2019-09-19 17:59   수정 2019-09-20 00:10

금융위원회는 지난 6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내용은 발행주식총수의 5% 이상을 기관투자가가 취득한 때 그리고 그 이후에는 1% 이상 변동이 있을 때 그 상세 내용을 5일 안에 보고하도록 하는 ‘대량보유 공시의무’(5%룰)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①회사나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위법행위 유지(보류·중지)청구권 등 상법상 보장된 권한(상법 제385조 제2항, 제402조, 제424조)을 행사하거나 ②보편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회사의 정관을 바꾸고자 하는 경우 또는 ③회사의 배당 결정과 관련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며 이런 경우에는 5%룰을 대폭 완화 적용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많다.

첫째, 주주활동과 관련해 ①위법행위 유지청구권 ‘등’ 상법상 보장된 권한에서 ‘등’이 문제다. ‘등’에는 위법행위 유지와 성질이 같은 대표소송이 포함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소수주주권에 속하는 대부분 권리가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게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것들이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기업에 물어보기나 했나.

또 ②“보편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회사의 정관을 바꾸고자 하는 경우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에서 제외한다”고 정하려 한다. 이는 상위법에 정면으로 반(反)한다. 지배구조 변경이란 대표이사·이사회·감사(위원회) 구조 변경을 말하는데, 자본시장법 제147조 제1항에서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 이사회 등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의 변경 등은 발행인의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행령 규정은 당연 무효다.

③배당정책 변경은 일본에선 중대한 변경으로 간주하고, 미국에서도 배당정책·주식배당·주식분할 등을 자본구조·배당정책에 중대한 변화(material change)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만 이것이 경영 영향과 무관하다고 억지로 법령에 정한다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다.

둘째, 금융위와 거래소 보고의무 문제다. 대량취득보고 기간은 5% 이상 취득일로부터 5일 내로, 상세 보고를 해야 한다. 실은 독일, 유럽연합(EU), 영국처럼 3% 이상 취득 시부터 2거래일 내에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한국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간섭에 대한 방어수단이 전혀 없어 조기 경보체제 확립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정안에 따르면 공적연기금에 대해서는 보고 기간을 크게 늘렸고 약식 보고만 하면 된다. 경영권에 영향을 끼칠 목적이 있더라도 5일 내 약식 보고하면 된다. 이사 해임·위법행위 유지·지배구조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임원 보수·배당 관련 제안 등은 월별 약식 보고를, 의결권 행사·신주인수권 행사 등은 분기 약식 보고를 하면 된다. 연기금은 기업을 적대적 M&A할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연기금도 그동안 경영간섭은 꾸준히 해왔다. 앞으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명분으로 더욱 빈번히 깊게 관여할 것이다. 시행령 개정은 연기금에 과도한 규제완화를 감행하려 한다.

셋째, 10% 이상을 취득한 일반 기관투자가는 취득 후 6개월 내 매도할 때 단기매매차액이 생기면 이를 기업에 반환해야 한다(10%룰). 대량보유자는 내부자 거래로 인식해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이와 달리 공적연기금은 10% 이상 취득했더라도 경영권 영향 목적이 없으면 차액반환의무가 면제된다. 개정안에서 심지어 정관 변경을 요구하는 것조차 경영권 영향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차액반환의무 면제는 유지하려 한다. 이로써 연기금은 경영간섭이 더 자유로워진다. 이 조치는 실은 국민연금에만 해당한다. 10% 이상을 보유한 공적연기금은 국민연금뿐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한낱 자율규범이다. 이를 강행법처럼 강력하게 시행하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이런다고 기업가치가 올라가나? 애먼 국민연금이 중간에 끼어 고생이고, 기업은 그저 숨이 막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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