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37년 만에 다시 탄 오토바이

입력 2019-09-19 18:10   수정 2019-09-20 00:06

처음 오토바이를 배운 건 1975년 중학교 2학년 때다. 당시 우리 집은 ‘형제상회’라는 가게를 운영했는데 배달을 돕기 위해 타기 시작했다. 면내에 가게가 몇 집 없다 보니 주문이 들어오면 오토바이에 소주, 맥주나 콜라, 사이다 등을 싣고 배달을 다녔다.

중학생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포장도로가 거의 없던 시절, 자갈이 깔린 울퉁불퉁한 길에서 오토바이가 넘어질 때도 있었다.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먼지가 어찌나 자욱한지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밤에는 눈으로 들어오는 하루살이를 피하며 운전해야 했다. 대학생이 되던 무렵 집에서 배달용 1t 트럭을 사면서 비로소 오토바이 배달 업무가 줄어들었다.

추억의 오토바이는 꼭 다시 타야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즐겨 타셨는데, 어린 눈에 그 모습이 멋져 보였다. 소풍 가는 날이면 아버지는 점심시간에 맞춰 오토바이를 타고 오셔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과 김밥, 삶은 달걀을 가져다주셨다. 선글라스와 가죽 잠바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짙은 향수로 남아 있다.

50대 중반이 되자 더 나이를 먹으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2년 전 큰맘 먹고 오토바이를 장만했다. 무려 37년 만의 일이다. 이후 지역의 바이크 동호회원들과 함께 1년에 한두 번 영월이나 안동까지 나들이를 다녀오곤 한다.

요즘 오토바이를 탈 때면 어린 시절 기억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영화에서 보던 큰 오토바이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은 어릴 적에는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생업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분들이 많지만 이제는 취미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도 꽤 늘었다.

내가 오토바이를 처음 타던 때와 비교하면 오늘날 1인당 국민소득은 거의 50배 이상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세계 11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요즘 경제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져 걱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경제성장률이 최하위이고, 저출산·고령화로 성장 동력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남유럽이나 남미의 일부 국가처럼 지금 누리는 혜택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어린 나이에 집안을 돕기 위해 배달 오토바이를 타야 했던 시절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대한민국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좀 더 부강하고 안정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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