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위기감이 커진 여권의 내년 총선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대대적인 물갈이 가능성이 높아진 중진 의원들과 비례대표 의원에게 험지 출마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역 의원 전원에게 적용되는 경선도 일부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타 지역구에서 치르게 될 전망이다.
“현역 의원, 타 지역구서 경선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인사는 20일 “내년 4·15 총선에서 현역 의원 일부는 본인 지역구에서 당내 경선을 치르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역 의원 당내 평가와 전략 공천 방향에 따라 타 지역구로 옮기는 의원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5월 발표한 공천룰에서 공천 배제(컷오프), 중진 의원 물갈이 등의 인위적 물갈이는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진 의원들은 “일률적인 퇴진 분위기에 유탄을 맞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며 “경쟁력을 키워 경선을 통과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5월 ‘현역 의원 전원이 경선을 거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지역구를 보장해 준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현역 의원 사이에선 타 지역구 경선 방침에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3선 의원은 “이런 말장난으로 갑자기 공천 룰을 바꾼다면 당내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한 중진 의원은 “10년 이상 몸담은 지역구를 갑자기 떠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사실상 불출마를 압박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조국 정국’으로 나빠진 여론을 인적 쇄신론으로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고 해석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이후 ‘대대적인 물갈이론’이 도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재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3선) △양정철 민주연구원 원장의 불출마설도 조 장관 취임 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쇄신론이 힘을 얻자 의원 사이에선 다양한 방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해찬 대표와 가까운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내년이면 68세인 이 대표가 정계 은퇴를 선언한 만큼, 70세 전후 의원들의 용퇴 얘기도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내년 1월 구체적 윤곽 드러날듯
현역 의원의 험지 출마도 잇따를 전망이다. 수도권 출마를 수년 동안 준비해 온 한 현역 비례대표 의원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인 TK(대구·경북) 지역 출마론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서형수 의원이 불출마 의사를 전달한 경남 양산을에도 이철희 의원이 거론된다. TK를 지역구로 둔 한 의원은 “영입인사뿐 아니라 현역 의원에게도 계속 험지 출마를 설득하고 있다”며 “다만 현역 의원은 본인이 100% 동의하지 않으면 강제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영입 인사의 험지 출마 움직임은 보다 활발하다. 불출마를 선언하긴 했지만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민주당 지도부 권유에 구미갑 지역을 직접 방문해 둘러보는 등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남 지역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전 실장이 구미 지역에 나와준다면 험지에서 뛰고 있는 출마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러 명이 설득했다”며 “하지만 정치인이 아니다 보니 (출마) 결정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공식 국회사무처 입법차장(경북 경주)과 전상헌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협력관(경북 경산), 김영문 관세청장(울산) 등 원외 인사들도 TK·PK(부산·울산·경남)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현 정부의 1~2기 내각 출신 인사도 험지 출마론이 거론되고 있다.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은 의정부·파주 등 민주당 취약 지역인 접경 지역 출마가 거론되고 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 2차관 역시 민주당 약세 지역인 강원 강릉과 경기 이천 지역 출마를 권유받고 있다.
현역 의원들의 험지 출마 지역은 내년 초에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우선 현역 의원은 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 평가와 12월 초 이뤄지는 지역 유권자 안심번호 여론조사 등을 거쳐야 한다. 이후 내년 1월 초에야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가 발표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현역 의원들은 당의 전략 공천과 맞물려 험지 출마를 본격적으로 압박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