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 대기업 닮아가는 실리콘밸리 기업들

입력 2019-09-23 17:14   수정 2019-09-24 00:25

미국 혁신 기업의 대명사인 아마존은 한 달 12.99달러(약 1만5000원)를 내는 고객에게 프라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종의 유료 회원제 서비스다. 2005년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땐 주문한 상품을 이틀 내 배달해주는 빠른 배송 서비스가 핵심이었다.

혜택은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현재 아마존 프라임 고객은 수만 편에 달하는 영화와 TV 쇼, 60만 권이 넘는 책을 추가 비용 없이 볼 수 있다. 인터넷상의 가상공간인 클라우드에 사진도 무제한 저장할 수 있다. 아마존이 보유하거나 사업 제휴를 맺고 있는 서비스도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서비스 영역이 대형 유기농 마트,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 인공지능(AI) 스피커, 보안 서비스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아마존의 기본 전략은 충성 고객을 근간으로 ‘아마존 생태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다양한 혜택을 한 번 맛본 고객들은 유료 서비스를 잘 해지하지 않는다. 아마존의 유료 회원 수가 지난해 4월 1억 명을 넘어선 이유다. 사실상 사업을 독과점하고 있지만 이익률은 낮게 가져간다. “이익률이 낮으면 고객을 더 많이 끌어당기면서도 시장 경쟁을 방어하기가 쉬워진다”는 게 아마존 창업주인 제프 베이조스의 경영철학이다. 이익 잉여금은 배당으로 주주에게 돌려주기보다는 대부분 신규 사업에 재투자한다.

이런 아마존의 경영전략을 두고 한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공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던 한국 대기업들의 전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됐던 기업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20여 년이 흐른 지금,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의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애플은 지난 10일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애플아케이드)와 유료 동영상 서비스(애플TV플러스) 가격 정책을 공개했다. 매달 4.9달러(약 6500원)의 이용료만 내면 100여 개가 넘는 온라인 게임 또는 애플이 자체 제작한 영상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애플 아이폰을 사용하는 고객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등으로 쉽게 갈아타지 못하도록 하는 생태계 구축 전략이다. 구글이 자율주행 자동차의 운영체제(OS)에 공을 들이고 페이스북이 가상화폐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궤를 같이하는 흐름이다.

물론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이들 기업은 반독점이나 불공정 거래 등을 이유로 세계 각국의 규제를 받는다. 협력사와의 불공정 계약(아마존)과 광고 시장의 시장지배력 남용(구글) 같은 사업 과정이 규제 대상이다. 한국의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규제, 지주회사의 소유 규제처럼 연관 산업이나 시장으로의 진출을 원천 규제하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받는 바이오와 핀테크(금융기술)산업의 국내 규제는 이보다 더욱 촘촘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기업의 사업 확장이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해치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일각의 주장은 복잡한 경제 현상의 한쪽 면만 들추는 것이다. 모바일용 앱(응용프로그램)을 사고파는 애플의 앱스토어는 경쟁을 해친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강도 높은 독과점 심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런 앱스토어가 지난 한 해 세계 앱 개발자들에게 지급한 돈은 340억달러(약 40조6000억원)에 이른다.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규제한다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커지진 않는다. 아마존, 구글, 애플 등이 규제받지 않고 새 영역에 진출해 경제 역동성을 높이는 장점을 더 눈여겨볼 때다.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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