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는 23일 이사회를 열어 삼양식품 주식 127만9890주(지분율 16.9%)를 블록딜로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HDC는 삼양내츄럴스(33.2%)에 이은 삼양식품의 2대 주주다. 주당 예정 매각가격은 7만4000원으로, 거래가 성사되면 HDC는 947억여원을 현금화한다. 매각 대상은 미래에셋대우로 정해졌다.
HDC는 미래에셋대우와 주가수익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나중에 미래에셋대우가 삼양식품 주식을 처분할 때 이번 인수가보다 싼 값에 팔 경우 차액을 보전해주는 조건을 달았다.
HDC 계열사 HDC현대산업개발은 미래에셋대우와 손잡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최근 뛰어들었다. 고려대 동문 사이인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과 정몽규 HDC 회장은 최근 활발한 협업 행보를 펼치고 있다. 2017년엔 HDC현대산업개발이 미래에셋대우로부터 부동산114를 인수하기도 했다.
HDC의 삼양식품 주식 매각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올초 삼양식품 정기 주주총회를 계기로 14년간 이어진 HDC와 삼양식품 간 우호적 관계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은 외환위기로 경영난을 겪던 끝에 1998년 화의절차에 들어갔다. 삼양식품 대주주 일가는 2005년 경영권 되찾기에 나섰다. 이때 대주주 일가의 부족한 자금을 메워주는 역할을 HDC가 맡았다. 고(故) 정세영 HDC 명예회장과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동향이어서 인연이 각별했던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HDC와 삼양식품 대주주 일가가 올해 삼양식품 정기주주총회에서 대립각을 세우면서 두 회사의 관계가 틀어졌다. HDC는 이사가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자격을 정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제안했다. 당시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수사 및 재판을 받았던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김정수 사장 부부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HDC가 블록딜을 통해 손에 쥘 현금의 사용처도 시장의 관심거리다. 일각에선 이 자금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쓰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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