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은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기획한 범죄"

입력 2019-09-24 17:25   수정 2019-09-25 03:34

“청일전쟁은 ‘1차 조선 전쟁’, 러일전쟁은 ‘2차 조선 전쟁’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한·일 양국 국민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이뤄진 한·일 강제병합과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적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일본 팽창주의에 대한 공통의 역사 인식을 가졌으면 합니다.”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81·사진)는 24일 서울 순화동에서 열린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한국어판(한길사)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와다 교수가 러일전쟁에 관한 일본과 러시아, 한국 자료를 전면적으로 비교하고 연구해 썼다. 2009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지난해 중국에 이어 이번에 국내에 출간됐다. 각주를 2402개나 넣을 만큼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러일전쟁 직후 전쟁의 발발 기원과 실체를 진지하게 조사한 러시아 육군 전사위원회의 시만스키 소장 조서를 찾아내 충실히 반영했다.

와다 교수는 “러일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러시아로부터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했다”며 “전쟁 직후 일본은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배했다”고 설명했다.

와다 교수는 이 책에서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史實)을 새롭게 밝혀냈다. 베조라브조프 등 러시아 내 개전파도 실제론 전쟁을 회피하고 싶어 했다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그가 러시아에서 직접 찾아 확인했다. 이 책은 “전쟁은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범죄였다”는 점을 사료를 통해 제시한다. 그는 “일본이 만주·조선 문제를 두고 전쟁을 피하고 싶어 러시아와 협상했지만 소통의 오해로 전쟁에 이르게 됐다는 기존 일본 학계 설명과 실제 러시아 사료를 통한 연구 결과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대(對)러시아 전략을 결정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오야마 이와오 육군 총사령관 의견서와 고무라 주타로 외무상 의견서 모두 ‘러시아가 협상에 응하지 않고 거부할 것이기에 전쟁해야 한다’며 만주·조선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앞서 전쟁 야욕을 먼저 드러냈다는 점이 책을 통해 밝혀졌다. 오야마 의견서엔 ‘만일 불행하게 개전에 이른다 해도 저들(러시아)의 군비는 현재 여전히 결점을 지니고 있다. 대항하기 충분하다’며 러일전쟁 호기론(好機論)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내 전후 민주주의자이자 지한파 지식인인 와다 교수는 그동안 일본 정부의 전후 처리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며 일제 식민지배와 화해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왔다. 그는 이 책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랄까. “일본으로선 러시아 시각을 많이 다루고 있어 피하고 싶은 책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전쟁 당사자였던 러시아에서도 꼭 이 책이 출간돼 20세기 초 동아시아 운명을 가른 러일전쟁에 대한 올바른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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