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주거 문제는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심각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홍콩 시민들은 낮은 세금 대가를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좁은 집에 사는 것으로 치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은 영국 통치 때부터 소득세와 법인세가 매우 낮고 상속세와 양도소득세, 보유세는 아예 없었다. 덕분에 각국 부자와 자본이 홍콩으로 몰려들었고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사회 인프라와 교육·의료·공공서비스에 필요한 자금을 어디에선가 마련해야 했다. 홍콩 정부는 공공토지를 경매 방식으로 매각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충당했다. 이 과정에서 토지 가격이 급등했고 청쿵(CK), 순훙카이(SHKP), 헨더슨, 뉴월드, 시노, 워프 등 자금이 풍부한 6개 기업이 부동산 시장을 장악했다.
막대한 토지를 보유한 이들 기업은 지가 상승을 노리고 택지 개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홍콩에선 만성적인 주택 부족과 집값 폭등 사태가 빚어졌다. 아파트 가격은 3.3㎡(평)당 1억원을 넘어섰다. 괜찮은 주택가의 20평형대 아파트는 한국 돈으로 50억원에 이른다. 방 두 칸짜리 아파트의 월세가 1000만원에 이르는 곳도 수두룩하다. 국제 공공정책 연구기관 데모그라피아에 따르면 평균 소득을 올리는 홍콩 직장인이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20.9년을 모아야 한다. 홍콩인의 주거 면적은 1인당 평균 161제곱피트(약 4.5평)로 싱가포르의 절반에 불과하다.
갈수록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것이 시위의 주요 배경이란 분석도 있다. 홍콩의 지니계수는 1981년 0.451에서 2016년 세계 최고 수준인 0.539로 뛰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우면 소득 분배가 평등하게, 1에 근접하면 불평등하게 이뤄진다는 뜻이다.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그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홍콩 젊은이들은 이처럼 불평등이 커진 게 홍콩으로 몰려든 중국 본토인들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에서 영주권을 얻은 중국인은 60만 명이 넘는다. 홍콩 인구 740만 명 중 100만 명이 본토인들로 추산된다.
이달 들어 중국 관영 언론들은 홍콩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탐욕을 비난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정부가 강제로 홍콩 부동산 업자들로부터 토지를 빼앗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홍콩의 6대 부동산 기업이 쌓아놓은 토지만 1억제곱피트(약 281만 평)가 넘는다며 이를 개발하면 홍콩에 100만 채 이상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의 압박에 뉴월드그룹은 300만제곱피트의 토지를 정부와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 토지 가치는 34억위안(약 5700억원)에 이른다. 부동산 재벌이자 카지노업계 거물인 뤼즈허를 비롯해 몇몇 대기업도 중국 정부 방침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신문 광고를 냈다.
홍콩 정부는 올해 안에 ‘빈집세’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아파트를 지은 뒤 집값 상승을 기다리며 분양을 미루는 행태를 막기 위해 빈집 1만여 채에 세금을 부과하는 게 골자다. 이에 맞춰 순훙카이그룹은 툰먼지역 토지를 정부에 다시 반납해 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헨더슨 등 다른 부동산 기업도 정부와 협조해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주택 공급 확대가 홍콩 시위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지적이 많다. 홍콩여론조사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결과(복수 응답)에 따르면 응답자의 91%는 시위의 근본 원인으로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을, 84%는 ‘민주주의 추구’를 들었다. 주택 문제를 꼽은 응답자는 58%에 그쳤다. 주거난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체제 문제라는 얘기다.
홍콩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연합 민간인권전선은 28일 오후 7시 홍콩 정부청사와 인근 타마르공원에서 ‘우산혁명’ 5주년을 기념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는 10월 1일(국경절)을 ‘애도의 날’로 정하고 대규모 민주화 시위도 벌이기로 했다.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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