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양도세에 성장 멈춘 아트마켓…年 3000~4000억대서 10년째 '빙빙'

입력 2019-09-30 17:30   수정 2019-10-18 11:42

국내 미술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미술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 들어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주요 화랑가의 전시에 애호가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올해 상반기 미술경매 낙찰 실적은 826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 줄었다. 서울옥션과 함께 국내 양대 경매회사로 꼽히는 K옥션이 지난 24일 실시한 가을경매 낙찰률은 7월(71%)보다 14%포인트 급락한 57%를 기록했다. “위기의 문턱에 서 있는 한국 미술시장의 추락을 막으려면 과세 완화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미술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 부작용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한국 미술시장 규모는 2007년 6045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다 2013년 3249억원까지 추락했다.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를 강화한 것이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날렸다. 2013년 1월부터 6000만원 이상 작고 작가 작품의 양도에 따른 수익이 기타소득세로 간주돼 세금이 부과됐다. 가뜩이나 신분 노출을 원치 않는 컬렉터들이 미술품에 세금이 부과된다는 사실만으로 작품 구입을 꺼렸다. 그 여파로 미술시장 규모가 2012년 4405억원에서 1년 새 26%나 쪼그라들었다. 이후 단색화 열풍이 불고 ‘환기 천하’란 신조어가 나올 만큼 김환기 화백의 그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음에도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연간 5000억원을 넘지 못했다.

실제 미술품에 부과된 기타소득세 부과액은 2013년 13억5000만원, 2014년 21억1000만원에 불과했다.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를 시행할 당시 세수 추정액이 연간 20억원 안팎으로, 세수 증대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던 미술계의 지적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도 미술시장 규모가 4500억원 정도로 추정돼 2013년보다 1000억원가량 늘어난 것을 감안하더라도 기타소득세 부과액이 30억원 안팎일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는 최근 개인들이 미술품을 경매회사나 화랑을 통해 양도해 얻은 소득을 사업소득으로 분류해 과세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미술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술품 소장가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경매회사에 작품 매각을 의뢰하는 행위의 법적 성격은 위탁매매임에도 정부는 여기서 발생하는 양도차익을 사업소득으로 간주해 세수를 늘리려는 것이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는 지난 20여 년간 정부와 국회가 미술계와 합의를 거쳐 어느 경우에도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해 종결하는 것으로 입법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며 “갑자기 사업소득으로 과세하려는 것은 현행 법령에 위배될 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도 “2013년 미술품 양도차익을 기타소득 분리과세로 분류해 미술시장이 크게 위축됐음에도 정부가 과세 강화를 추진하는 것은 결국 애호가들을 시장에서 쫓아내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30배로 커진 중국 미술시장

미술계는 침체된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과세정책 완화와 함께 대대적인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미술시장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0.1% 수준(약 2조원)으로 성장할 때까지 과세정책을 풀어주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울옥션에 따르면 국내 미술시장 거래액(약 4500억원)이 지난해 기준으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2%에 불과했다. 미국(28조원, 0.13%)과 영국(13조원, 0.47%)은 물론 중국(14조원, 0.11%)에도 크게 뒤졌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중국 미술시장 규모는 2007년(7조원)에 비해 두 배 커졌다”며 “최근 류이첸 선라인그룹 회장이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를 1972억원에 사들이는 등 세계 시장에서 중국 미술의 파워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공평과세’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 미술시장이 최소 2조원 정도로 커질 때까지는 양도차익 과세를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세 유예가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 문화서비스 취업 유발계수 적용기준에 따르면 미술시장이 연간 2조원 규모로 커질 때까지 양도세를 유예할 경우 최소 1만 명의 신규 고용이 생겨난다.

미술애호가 육성 대책 시급

미술계는 과세 유예와 함께 미술애호가들을 육성해야 침체된 시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술품을 사는 사람이 많아야 10만여 명에 달하는 전업작가를 비롯해 화랑과 경매회사, 운송업자, 액자업체들이 굴러갈 수 있어서다. 최웅철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중국과 싱가포르는 미술품 유통에 대한 다양한 세제 혜택으로 한국을 제치고 아시아의 주요 미술시장으로 성장했다”며 “미술애호가들에 대한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많은 기업인이 세무당국이나 사법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림을 구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찬규 학고재화랑 대표는 “기업에 대한 미술품 구매 비용 지원 규모를 늘려야 한다”며 “장식이나 환경미화를 목적으로 한 기업들의 미술품 구입액 비용 처리한도를 현재 거래 단위별 1000만원에서 최소 5000만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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