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로제는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한다는 방향성에서는 맞지만 제도 안착을 위한 추진 전략을 마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한국은 ‘장(長)시간 근로 국가’란 오명을 벗지 못했는데, 산업계에선 좀처럼 그 관행을 개선하지 못했다. 우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 탓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인력 수급 등 문제가 심각해 제도 안착까지는 애를 먹을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근로시간 단축 관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 중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문제가 없다고 답한 사업장은 61.0%에 그쳤다. 준비 중이라는 응답이 31.8%, 준비를 못 하고 있다는 응답은 7.2%였다. 준비를 완료하지 못한 사업장이 거의 40%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주 52시간 초과자가 있는 기업은 17.3%, 이 중 제조업이 33.4%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자가 연중 상시 발생하는 경우는 46.8%로 집계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현장지원단을 통해 지원하고, 국회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을 포함한 보완입법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로제는 그리 간단하게 안착하지 못할 것 같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능력이 있는 중소기업은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준비가 다 끝났다고 보면 된다. 아직 준비 중인 기업은 도입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당장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들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고용이나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데, 여건이 안 돼 수주량 축소와 사업 규모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될지 모를 이들 기업을 대거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우리 경제 체질이 이렇게 구조조정된 기업의 노동자를 다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대체 산업기반이 탄탄하다면 그런 주장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탄력근로제로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지난해 말 노동연구원의 탄력근로제 활용실태 조사결과에 의하면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서 탄력근로제 도입률은 4.3%, 미도입 기업 중 도입 계획이 있는 곳은 3.8%, 그리고 ‘탄력근로제 개선 요구 사항이 없다’는 응답이 49.8%로 나타났다. 탄력근로제가 주 52시간 근로제의 보완책으로 활용될 수는 있지만, 이는 탄력근로제에 적합한 근로방식의 중소기업에만 그렇다. 더구나 주 52시간 상시초과자가 발생하는 중소 제조기업은 탄력근로제도 소용없다.
그렇다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 기업 사정이 어렵다고 주 52시간 근로제란 큰 물줄기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이 초래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도 시행 시기는 내년 1월 1일로 정해졌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등 어려운 현실 상황을 감안,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도 큰 방향에서 목표 달성 시기를 조정하지 않았는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적용할 주 52시간 근로제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모든 중소기업에 대해 일률적으로 유예하는 것이 어렵다면, 아직 준비 중이거나 준비가 안 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유예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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