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고수는 판을 바꾼다

입력 2019-10-03 15:02   수정 2019-10-03 15:04

공개 입찰을 통해 발전기를 구매하려는 국내 D사의 박 대표. 그의 마음속엔 이미 정해 놓은 업체가 있었다. A중공업이다. 이 회사와는 함께 일한 적이 있고 제품 품질도 좋아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상대는 생각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조건이 까다로워 다른 업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대로 입찰을 진행한다면 A중공업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99%다. 거꾸로 A중공업이 과도한 요구를 해온다면 자칫 프로젝트 진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A중공업과의 협상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이처럼 나에게 꼭 필요한 파트너가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있다. 그 해법을 미국의 인수합병(M&A) 사례에서 찾아보자.

미국 케이블TV업계 4위인 미디어원그룹이 M&A 시장에 나온 적이 있다. 이때 인수를 놓고 격돌한 회사는 AT&T와 컴캐스트였다. 신이 난 것은 미디어원이었다. 두 회사의 경쟁으로 한껏 몸값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AT&T는 컴캐스트와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전략적 승부수를 던져 최후의 승자가 됐다. 어떻게 했을까. 협상의 판을 바꾸는 전략을 썼다. 협상 대상을 미디어원이 아니라 자신의 경쟁자인 컴캐스트로 바꾼 것이다. 두 회사는 미디어원으로부터 원하는 것이 서로 달랐다. AT&T는 미디어원의 케이블망을 원했고, 이미 케이블망을 갖고 있었던 컴캐스트는 미디어원의 고객을 원했다.

이를 파악한 AT&T가 컴캐스트에 이렇게 제안했다. “이번 입찰에서 빠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보유한 케이블 방송사 몇 개와 200만 명의 시청자를 넘기겠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에게 시청자 1인당 4500달러를 주세요.” 결국 컴캐스트는 AT&T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AT&T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미디어원 인수에 성공했다. 협상 대상을 미디어원에서 컴캐스트로 바꿈으로써 판을 뒤집은 셈이다.

이제 D사의 박 대표 사례로 돌아가 보자. 박 대표가 고민스러운 것은 협상 대상으로 A중공업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A중공업도 까다로운 입찰 조건 때문에 다른 업체들은 참여하기 어렵다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표는 어떻게 판을 뒤집을 수 있을까.

박 대표는 입찰 조건을 바꿨다. 까다로운 입찰 조건을 대폭 완화해 다른 업체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하니 A중공업은 자신 외에도 대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처럼 강하게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A중공업은 당초 제시한 금액보다 10% 가까이 낮춰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 협상의 핵심은 판을 다시 짰다는 데 있다. A중공업과 어떻게 협상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A중공업이 경쟁 구도에 놓이도록 재편한 것이다.

힘이 센 상대 때문에 협상에 어려움이 예상되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유리하게 협상의 판을 바꿔라. AT&T처럼 협상 대상을 바꾸든지, 아니면 D사처럼 상대가 경쟁하도록 만들어라.

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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