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래 놓고 싸우는 美 GM 노사

입력 2019-10-07 17:10   수정 2019-10-08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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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너럴모터스(GM) 노조의 파업이 7일로 4주째에 접어든다. 하지만 테리 디츠 미국자동차노조(UAW) 부회장이 “사측이 퇴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전국 단위 파업으론 2007년 후 처음 발생한 이번 파업은 이미 1970년 이후 최장기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번 파업은 사실 ‘미래’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자동차로 전환하려는 GM은 작년 11월 미국 내 4개 공장을 폐쇄하고 대신 전기차 및 배터리 공장을 세우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근로자 1만4000명(전체의 15%)을 감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80억달러의 이익을 낸 GM이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하자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4차 산업혁명 논하는 美

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엔 같은 크기의 내연기관차 폭스바겐 골프보다 부품 125개가 적게 들어간다. 엔진, 변속기 등 복잡한 부품이 없고 모듈화가 쉬워 조립시간도 짧다. 이 때문에 전기차로 전환하면 같은 수의 차를 생산할 때 지금보다 인력이 약 30% 덜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GM의 구조조정은 이런 미래를 대비한 것이다. GM뿐 아니라 포드, 폭스바겐 등도 비슷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전기차만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앤드루 양은 성인 1인당 월 1000달러씩 나눠주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허튼소리가 아니다. 실리콘밸리 중심의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등 혁신기술 발전을 지원하되 이로 인해 350만 명의 트럭 운전사, 250만 명의 콜센터 직원 등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위기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재원은 10% 부가가치세를 신설해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앤드루 양은 유세에서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언제냐”고 물은 뒤 “바로 지금”이라고 답했다. 자신 외에 미래를 지향하는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미국엔 이처럼 곳곳에서 미래를 향한 싸움과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을 만났다. 2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앱티브사와 자율주행 관련 합작법인을 세우기 위해 뉴욕에 왔을 때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아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텔루라이드를 한국에 파는 문제에 관해 물었더니 “해외에서 생산하는 차를 들여오려면 노조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과거에서 멈춰선 한국

이렇게 경직된 노사환경이다 보니 GM과 같은 사전적 구조조정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GM, 포드, 폭스바겐 등이 앞서나갈 때 현대차는 뒤처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미국에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SK이노베이션, 롯데케미칼, 한화큐셀, CJ제일제당 등 간판 기업들이 지난 몇 년간 연구개발(R&D)센터나 공장을 지었고 미국 기업을 인수했다. 시장자본주의 기반이 워낙 강해 기업 활동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 보니 AI, 자율주행 등 혁신에서 앞서고 있는 덕분이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감세에 규제완화까지 시행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미국 수준의 친기업적 환경을 갖췄다면 어땠을까. 현대차의 20억달러는 한국에 투자돼 수많은 고용과 성장을 창출했을 수도 있다. 두 달째 과거와 이념에 매몰돼 두 쪽으로 갈린 조국을 보며 앤드루 양의 질문을 되풀이해본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한국) 정치인을 본 적이 언제인가.”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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