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위기의 리브라

입력 2019-10-07 17:50   수정 2019-10-0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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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가상화폐 ‘리브라(Libra)’가 공식 출범을 선언한 지 넉 달 만에 좌초 위기다. 페이팔(Paypal)이 프로젝트 참여 거부를 발표했고, 다른 여러 회원사도 손을 뗄 채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용자가 24억 명인 페이스북, 지구촌 신용결제망을 움켜쥔 마스터카드와 비자, 우버 등의 초호화 민간연합군이 각국 중앙은행의 견고한 방패를 뚫지 못하는 형국이다. 중앙은행들의 반대는 리브라를 통해 송금과 결제가 이뤄질 경우 자신들을 뛰어넘는 ‘거대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리브라의 상대를 더 정확히 말하면 ‘달러 제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트코인 리브라 등 가상화폐는 “돈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미국에는 진짜 통화가 하나밖에 없다”고도 했다.

지난 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확립된 달러 패권은 약 100년간 글로벌 경제질서 그 자체였다. ‘금태환 정지 선언’ 등을 거치며 달러는 이제 금이 아닌 ‘종이’의 한 종류로 격하됐지만 독보적인 지위는 그대로다. 영국 파운드가 무너질 때는 미국이라는 대안이 있었지만 달러 위기 앞에서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철옹성 같던 달러 제국에 균열이 시작됐다. 무한정 창출된 달러 신용이 만들어낸 거품을 본 사람들은 달러 세상의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구상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형태 화폐인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중국으로, 다음달 세계 최초의 CBDC 발행을 앞두고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 특히 CBDC 논의가 활발하다.

가상화폐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시기도 CBDC와 비슷한 2009년이다.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개입 없이 간편하고 신속하게 결제하는 ‘탈중앙 시스템’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해킹에 안전하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도 인기의 배경이다.

가상화폐든 디지털 화폐든 가치가 불안정한 점이 화폐로서의 맹점이다. 한국은행이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다. 그래도 눈앞의 통화전쟁은 현실이다. 각국 정부와 민간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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