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수도권의 122개 공공기관을 이전하겠다”고 공론화한 뒤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이 지난 5월 언론 인터뷰에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내놓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다시 불을 댕겼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혁신도시에 대한 성과 평가가 끝나는 내년 3월 이 결과를 보고 공공기관 추가 이전에 대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평가결과가 나오는 시점이 내년 3월이라는 게 공교롭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 일정에 맞물리도록 계획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다. 수도권 집중화·과밀화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을 꾀할 목적이었다. 숱한 논란 속에 공공기관 153곳이 혁신도시 10곳으로 이전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기대했던 지방경제 활성화 효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공공기관의 업무 효율성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국민 노후자금 644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이 대표적이다. 전북 전주 이전이 가시화한 2016년 이후 기금운용 부문 인력 퇴사자는 100명이 넘었다. 1년 넘게 기금운용본부장 공석 사태를 빚기도 했다.
서울의 국제금융허브 경쟁력 순위가 추락한 것도 금융공기업의 지방 이전과 무관치 않다. 금융인프라 집적을 통한 글로벌 금융회사 유치 대신 지방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금융허브를 분산시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에서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추가 이전을 거론하고 있다.
수도권과 가까운 혁신도시의 경우 여전히 수도권에서 출퇴근하거나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주말부부로 생활하는 직원들이 많다. 이들이 빠져나가면 주말에는 ‘유령도시’가 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공공기관이 떠난 지역에선 일자리가 줄고 지역 경기가 악화됐다. ‘제3 금융중심지’ 선정을 둘러싸고 부산시와 전라북도가 기싸움을 벌인 것처럼 향후 지역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높다.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이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데 따른 결과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기존 이전 계획은 이행하면서도 신규 이전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도 엄청난 사회갈등과 후유증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공기관 추가 이전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국론 분열과 지역 갈등이 격화돼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정부 여당의 ‘국정 운영 시계’가 내년 총선에 맞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공공기관 이전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책임있는 여당의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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