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3만9000원만 적금 넣으세요. 월 3만원씩 통신비 할인해드려요."
국내 한 이동통신사가 상조회사와 손잡고 판매 중인 결합상품이 일선에서 '적금'으로 둔갑했다. 납입기간 9년2개월을 채우지 못하면 원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품이지만 일부 대리점과 판매점이 이를 '적금'인 양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있는 탓이다.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 이동통신업체 L사가 허위·과장 광고로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일부 대리점·판매점들의 영업 행태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별의별 상품이 다 나온다", "이렇게까지 팔아야 하느냐" 같은 뒷말도 흘러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L사의 일부 대리점과 판매점 블로그 등에는 통신·상조 결합상품을 적금 상품으로 안내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이들은 "적금에 가입하면 통신료를 월 3만원씩 할인받을 수 있다. 만기 시에는 납입금액을 100% 환급한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찾은 서울 모처 한 대리점에서도 이를 적금이라 안내했다.
적금에 가입만 하면 통신비를 월 3만원씩 깎아준다는 소리에 솔깃하지만, 이 상품의 정체는 적금이 아닌 상조 상품이다.
L사는 2014년 상조업체인 대명유라이프(대명아임레디)와 제휴해 통신·상조 결합상품을 만들었다. L사를 통해 가입 후 대명유라이프에 매달 3만9000원씩 9년2개월(110회)을 납부하면 만기시 납입 금액(429만원)을 전액 돌려받는 상품이다. 통신비는 월 3만원씩 2년간 총 72만원을 할인받는다. L사 고객 통신 요금에서 3만원이 빠지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L사를 통해 최대 2구좌를 만들 수 있다. 매달 7만8000원을 9년 2개월간 대명유라이프에 납부하면 통신비를 월 6만원씩 할인받을 수 있다. 일부 대리점과 판매점이 "적금으로 월 6만원 할인"을 내세우는 것은 동일 상품 2개를 가입해야 가능하다.
대명유라이프는 납입기간을 다 채우면 원금 100%를 환급해준다고 안내했다. 단 중도 해약 시에는 원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납입기간에 따라 0~85%까지만 환급받을 수 있다. 상조 상품은 최대 5000만원까지 예금자 보호가 되는 적금과는 다르다. 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보통 2년 약정 할인을 하는 통신사 상품과 달리 사실상 9년2개월짜리 약정 할인을 한다고 볼 수 있다. 2년간 통신비 할인 혜택을 주지만 상조상품의 약정 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중도 해지하면 소비자에게 손해가 돌아가는 구조다.
게다가 충분한 설명 없이 원금 환급, 통신비 할인을 내세워 고객을 모집한 까닭에 포털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상품 가입 해지 문의가 여럿 올라왔다.
한 네이버 지식인 이용자는 "L사 대리점에서 적금 형식이라 설명해 가입했는데 적금이 아니었다. 상조 상품과 핸드폰을 모두 해약, 해지하고 싶은데 위약금 발생 여부를 알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대명유라이프 적금이라 안내받아 가입하겠다고 했는데 상조회사인 줄 몰랐다"면서 "알고 보니 중도 해지하면 돈도 못 돌려받는다더라. 호갱(호구 고객) 되는 거 순식간"이라고 털어놓았다.
상조 결합상품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커지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소비자 피해주의보를 내렸다. 당시에는 일부 상조회사가 TV, 세탁기 등을 무료 증정하는 결합상품을 선보였다.
공정위는 "가전제품 등 결합상품을 목적으로 한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상조회사 재정건전성이 악화돼 폐업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만기 환급금 미지급으로 인한 폐업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며 "가전제품 등과 결합된 상조상품 가입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통신비 할인, 만기 환급 조건을 내건 L사의 상조 결합상품도 공정위 지적 사례에 해당할 수 있다. 상조 상품을 적금으로 소개하는 것은 허위·과장 광고로 공정위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이에 대해 L사는 "해당 결합상품은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차원"이라며 "영업점이 과장된 홍보나 자극적인 선전 등을 하지 않도록 지속 모니터링 하고, 적발 시에는 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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