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지역의 중소형(스몰캡) 석유가스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014년 미국에서 셰일오일 붐이 본격적으로 일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과 캐나다 투자자는 셰일오일 업체엔 큰돈을 투자했지만 기존 중소형 에너지 업체들은 외면했다. 셰일오일 중심으로 에너지산업이 재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투자자의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홀대받던 북미 지역 에너지 업체들에 러브콜을 보낸 것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였다. 북미 기업들은 하나둘 런던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 앨라배마에 있는 다이버시파이드가스앤드오일, 캐나다 토론토의 에코애틀랜틱오일앤드가스, 캐나다 캘거리에 본사를 둔 그란티에라에너지 등이 그랬다. 운영자금 마련, 부채 감축, 새로운 자산 인수 등 각각의 이유로 런던증시 상장에 나섰다.
런던증권거래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지난달 말까지 런던증시에 1, 2차 상장한 에너지 업체 가운데 40%가 북미 기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같은 기간 무려 40억파운드(약 5조92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런던증시의 주요 고객사인 유럽(조달 규모 35억파운드)과 아프리카(6억파운드) 기반의 에너지 기업들을 크게 앞지른다.
북미 지역 기업들로선 런던행 기업공개(IPO)는 차선책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자본시장인 뉴욕증시에 입성하지 못한 것이어서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다. 물론 런던증시에서도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옳았다. 새로운 시장에선 성장성은 부족하지만 꾸준히 수익을 내는 북미 에너지 기업들을 환영했다.
상장 이후 성적표 역시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설립 18년차 석유 채굴업체인 다이버시파이드가스앤드오일은 2017년 2월 IPO 당시 주당 63파운드에서 거래됐다. 현재 이 회사의 주가는 103.5파운드를 웃돈다.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덕분에 부채비율을 낮춰 수익률이 높아졌다. 에코애틀랜틱오일앤드가스도 2017년 1월 상장 당시 주당 86파운드 수준이었는데 현재 135파운드에 거래된다.
역설적으로 뉴욕에 상장한 셰일업체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소 셰일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다우존스지수가 추종하는 미국의 유전 채굴·생산 부문 지수는 작년 10월 이후 50% 가까이 하락했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셰일업체 익스트랙션 주가는 2016년 10월 상장 당시 21.36달러에 거래됐지만 현재 2.75달러 수준이다. 기업가치가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텍사스주의 대표 셰일업체 파이어니어내추럴리소시즈는 뉴욕증시에서 2014년 7월 최고점(주당 221.46달러)을 찍은 뒤 하락곡선을 그렸다. 현재 주가는 129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셰일업체 WPX에너지도 2014년 8월 26.62달러로 최고가를 기록한 뒤 현재 주당 10달러 안팎이 됐다. 반토막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파산보호신청을 한 미국 셰일업체는 26곳으로, 작년 한 해 28개 업체와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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