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회계 논란에 바이오산업 발목 잡혀선 안 돼

입력 2019-10-11 17:29   수정 2019-10-1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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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평가는 과학적 측면만큼이나 예술적 측면이 농후하다(Valuation is as much art as science).” 기업가치평가가 얼마나 미묘하고 어려운지를 대변하는 문구다. 기업가치평가는 누가 평가를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도출되는 ‘과학’이 아니라,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성장률, 손익분기점 도달 시점, 계속가치 등)에 영향을 받는 ‘예술’의 측면이 많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격언처럼 부적절한 가정을 토대로 가치평가를 하면 의미 없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서 논란이 된 점은 삼성그룹 지배 일가가 지분율이 높았던 제일모직의 가치는 부풀리고 지분율이 낮았던 삼성물산의 가치는 줄여 주식교환비율을 유리하게 설정했느냐 여부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재무보고가 쟁점이 된 이유는 제일모직의 지분율이 46.3%에 달했기 때문이다.

삼바는 2011년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미국의 바이오젠과 조인트벤처 형태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논쟁의 핵심은 삼바가 바이오젠이 보유하고 있던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의 존재와 내용을 제대로 공시하지 않고, 2015년 콜옵션의 행사 가능성이 커지자 보유주식을 재평가해 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증권선물위원회의 판단대로 불성실 공시는 명확하지만, 의도적으로 삼성그룹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게 주식교환비율을 왜곡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주식교환비율은 합병 당시의 주식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교환비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병 당시 두 회사의 주식가격이 본질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라면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왜곡한 사람을 처벌하고 제도를 정비하면 된다.

주식교환비율의 적정성을 검토한 회계법인이 의도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간과하고 왜곡하고 평가의뢰인인 삼성그룹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없는데도 회계법인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주관적인 가치평가의 속성을 지닌 회계의 특성에 비춰볼 때 지나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삼바가 2016년 상장했을 때 공모가격에 대한 상장 주관사의 평가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무제표의 내용과 작성 책임은 기본적으로 경영진에게 있다. 합병주식 교환비율에 위법사항이 없으므로, 중요한 재무정보를 제때에 숨김없이 공시할 의무를 위반한 책임자를 처벌하는 게 맞다. 규제 당국은 기업이 충실히 공시하도록 지도·감독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기업 재무보고의 감시자인 회계법인의 전문성 제고와 직업윤리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가 상승해 콜옵션이 행사된 것은 바이오산업계와 투자자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시판 승인이 불발해 콜옵션이 행사되지 않았다면 더 큰 문제가 야기됐을 것이다. 최근 바이오기업의 신약개발 실패 사례와 달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성공 사례다.

바이오산업은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특성상 정보비대칭이 심해 자본조달이 어렵다는 애로가 있다. 가치평가가 중요한 회계상의 문제를 과도하게 분식회계로 몰아가서는 바이오산업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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