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던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기고문으로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류 교수는 월간조선 10월호에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했다고? 농촌 유휴인력을 마이카 가진 중산층으로 키워'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며 "'전태일 평전'에 따르면 전태일은 16세 되던 1964년 봄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을 시작해 만 3년 만인 19세 되던 1967년 봄 '재단사'가 됐고, 같은 기간 그의 월급은 15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정확히 10배 올랐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로부터 다시 3년 후 1970년이 되면서 재단사 월급 2만3000원을 받았다. 전태일의 월급은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 동안 무려 15배 이상 상승한 셈"이라며 "이를 두고 과연 누가 착취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가"라고 했다.
이에 전태일재단은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류 교수의 곡학아세(曲學阿世)를 규탄한다'라는 입장문을 내며 "수치만 나열하며 이면을 보지 않거나 애써 무시하는 전형적인 곡학아세"라고 지적했다.
전태일재단은 "류 교수는 임금의 액수만 이야기하고 실질 구매력은 무시했다"며 "1960년대 당시 서울의 커피 1잔 값이 50원이었고, 당시 시다의 월급 1500원은 하루 종일 일해도 커피 1잔 값밖에 안되는 살인적인 저임금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재단사가 돼 받았다는 1만5000원 또한 하루 일당이 커피 10잔, 요즘 돈으론 4만원 정도로 그야말로 살인적 저임금"이라고 덧붙였다.
전태일재단은 "지금도 그렇지만 1960~70년대 당시 한국은 유례없는 장시간 노동 국가로,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적게 잡아도 주당 105시간, 일요일도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이었다"면서 "이렇게 일해 받는 일당이 시다는 커피 한 잔 값인 50원, 재단사는 10잔 값인 500원이었는데 이게 착취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끝으로 "류 교수처럼 편협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불순하게 전태일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역사에 또 다른 오점을 남기는 일"이라며 "그런 사람이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들의 불행이고, 우리 사회의 적폐다. 류 교수에게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오점을 반성하고 당장 교수직을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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