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 생태계의 최상위 기구는 연구·혁신·기업 위원회(RIEC)다. 총리가 직접 회의를 주재한다. 위원회 관계자는 “RIEC는 싱가포르에 강력한 혁신 역량을 가져다줄 장기 계획을 세우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5년 단위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기관은 국가연구재단(NRF)이다. 이곳의 지배 구조를 들여다보면 싱가포르형 혁신 모델의 비밀을 유추해볼 수 있다.
NRF는 총리 직속 기관으로 이사회 의장은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이 맡고 있다. 이사회 구성원 자체가 산·학·연 협력을 구현하고 있다. 8명의 장관(국방·외교·정보통신·보건·산업·환경·교육·국가개발)을 비롯해 싱가포르국립대(NUS)·난양공대(NTU) 총장, DBS그룹 최고경영자(CEO), 바이오센서즈 창업자, 테마섹인터내셔널 CEO, SIA엔지니어링 회장 등이 NRF의 정책을 결정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정부 주도형 산·학·연 생태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세계 첨단기술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과학자문이사회(SAB)가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로 꼽히는 리처드 프렌드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SAB 의장을 맡고 있다. 영국 암연구소 의장, 영국 수석과학자문관, 휴렛팩커드 부회장, GE 글로벌리서치 부회장, 하버드대 교수, 취리히공대 교수 등이 SAB의 구성원이다.
NRF가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할 때도 이 같은 시스템이 작동한다. 조남준 NTU 재료과학·공학학부 교수는 “NRF의 돈을 받으려면 세계의 석학과 글로벌 기업 CEO들의 평가를 사흘간 받아야 한다”며 “NRF는 주요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해 해외 최고 전문가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미리 입을 맞추는 ‘짬짜미’ 관행을 비롯해 연구비를 쉽게 타내기 위한 브로커까지 기승을 부리는 한국의 현실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 국내 대학 관계자는 “한국 교수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정년을 보장받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산학협력은 일종의 고액 아르바이트라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싱가포르=박동휘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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