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최대 수혜 586…"젊은 세대 위해 양보하라" 압박 받아

입력 2019-10-16 17:22   수정 2019-10-17 02:02


중견기업 간부 A씨(57)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입사했다. 한국 경제가 고성장의 한복판을 달리던 시기였다. 복지제도도 그해 큰 획을 그었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것이다. A씨는 입사 첫해 대상자가 됐다.

초기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파격적이었다.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은 70%에 달하는 데 비해 보험료율은 3%(근로자 부담분 1.5%)에 불과했다. 그만큼 아무나 가입할 수 없었다. A씨처럼 10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 직원만 가능했다. 당연히 이 제도의 혜택은 당시 막 사회에 진출한 ‘586세대(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현재 50대)’가 가장 많이 보고 있다. 기금 고갈 우려가 커지면서 계속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초기 가입자인 A씨는 은퇴 후 월 164만5000원을 받게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은퇴 후 A씨처럼 150만원 이상 타갈 예정인 현재 50대는 31.3%에 이른다. 반면 지금 40대는 11.5%, 60대 이상은 7.1%, 30대는 1.5%에 그칠 전망이다.

이처럼 586세대는 국민연금 혜택에서 다른 세대를 압도하고 있다. 문제는 2008년 이후 11년간 연금개혁이 방치되면서 이들이 누릴 혜택이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고성장 시대 수면 밑에 있던 연금문제는 저성장, 저고용과 맞물리면서 세대 갈등의 ‘핵’으로 등장했다. “주류 세력인 586이 앞장서 양보하고 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 ‘좋은 시절’ 거친 586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세 차례 올라 1999년 이후 소득의 9%(근로자 부담분 4.5%)까지 뛰었다. 반면 소득대체율은 2008년 50%까지 떨어진 이후 매년 0.5%포인트 감소해 2028년에는 40% 선까지 내려갈 예정이다. 특정 시점에 소득대체율이 떨어지더라도 그 이전에 낸 보험료에 대해서는 가중치를 인정받는다. 1988년 국민연금 가입자는 이후 세대보다 많은 연금을 받게 된다.

만약 A씨가 17년이 지난 2005년 회사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추계해 보니 월 수급액은 130만원으로 줄었다. A씨가 가입 초기 급여의 1.5%를 내던 보험료가 1999년부터 4.5%까지 뛴 점을 감안하면 수익률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2005년 가입자와 비교하면 586세대는 30% 정도 국민연금을 적게 내고도 매월 26.5% 더 많은 연금을 수령한다.

586세대가 은퇴할 시점이 다가오자 이번엔 장기요양보험, 기초연금 등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가 잇따라 강화됐다. 2008년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건강보험료에서 일정 비율을 공제해 기금을 마련하는데 이 비율은 2008년 4.05%에서 올해 8.51%로 높아졌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요양보험료율 역시 계속 올라갈 예정이다. 586세대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기여하고 제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기초연금 개혁 필요”

586세대가 국민연금 등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것은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다. 성혜영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어느 나라든 연금제도를 설계할 때 초기에는 보장성을 높이고 갈수록 소득대체율이 낮아지도록 한다”며 “도입 당시 고령자들이 짧은 기간 가입하고도 가능한 한 많은 혜택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8년 당시 퇴직 연령에 다다른 1930~1940년대생을 위해 마련한 좋은 조건이 사회초년생이던 586세대에 더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예상보다 빠른 고령화와 경제성장률 하락 등 연금 설계 당시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추가되며 사회보험 전반이 세대 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를 조금이라도 교정하기 위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동해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금은 노인의 70%가 받는 기초연금을 꼭 필요한 노인에게만 지급하자는 것이다. 세금으로 충당하는 기초연금은 한 해 16조원이 지출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혜택을 많이 받는 기성세대의 기초연금 지급을 줄이는 등 젊은 세대의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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