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적 셈법이 낳은 美·中 무역 '스몰딜'

입력 2019-10-16 17:33   수정 2019-10-17 00:14

“우리의 위대한 애국 농민을 위해 나는 중국과 사상 최고, 최대의 협상을 타결했다. 앞으로 중국에 수출할 이 많은 농산물을 우리가 과연 생산해 낼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든다. 하지만 그 일은 농민들의 몫이다. 중국, 고맙다.” 지난 10~1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13차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의 결과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의회의 탄핵 조사로 위축된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 지지층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날린 정치적 수사(修辭)로 이해되지만, 그래도 허풍이 도를 넘은 듯하다.

우선, 이번에 합의된 내용을 살펴보자. 미국은 2500억달러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현행 25%인 관세율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주부터 관세율을 30%로 올리기로 한 당초 계획을 보류한 것이다. 중국은 그 보답으로 미국산 농산물을 총 400억∼500억달러어치 구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 동안 무엇을 어떻게 구매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이게 이번 미·중 합의의 전부다.

외신들은 이번 합의를 두고 중국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양자 협상을 끌고 가는 데 성공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하고 있다. 중국 측 수석대표인 류허 부총리가 “워싱턴이 원하는 것의 40%는 지금 당장, 40%는 후속 협상을 통해 우리가 양보할 수 있다”며 점진적인 협상을 원했던 만큼, 미·중 양측은 향후 수준을 높여가며 단계적으로 타결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단기적으로 미국과 유화국면을 조성하면서 ‘홍콩 사태’에 대한 백악관의 적극적인 개입을 저지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공고하게 다지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거기에는 큰 양보 없이 내년 11월 3일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무역협상을 질질 끌어 보겠다는 심산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 미·중 협상의 핵심 쟁점 또는 난제라 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 예를 들어 ‘중국제조 2025’로 대표되는 산업정책과 국영기업 문제, 지식재산권 이행과 기술 및 정보 탈취 등에 대해서 베이징의 입장은 단호하다. 양보 불가다. 따라서 미·중 무역협상은 타결되더라도 기껏해야 낮은 수준이거나 중간 수준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초당적인 지지하에 안보 이슈를 포함한 중국과의 일괄타결 방식인 ‘빅딜’을 원하고 있다.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인 척 슈머 의원이 “이번 협상에서 트럼프가 화웨이 제재를 완화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고려해 중국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최적의 시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마저 정점을 지나 성장률이 꺾이는 상황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 또한 중국과의 확전을 자제하고 시간을 벌다가 내년 대선을 코앞에 둔 중반 또는 후반기에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홍콩 문제와 티베트 및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 안보 이슈 등과 연계해 중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확실한 해결책을 요구하며 베이징에 융단폭격을 가할 수 있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백악관은 이번 협상에 대해 중국의 금융시장 추가 개방과 환율조작 금지 및 지식재산권 보호 이행 강화 등에 대한 합의도 있었다고 뉴스를 흘렸지만, 현재로서는 그 내용이 오리무중이다. 미·중 양측은 추가 협의와 조율을 거쳐 내달 중순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지금의 구두약속을 보다 구체화한 합의문으로 만들어 서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세계인을 볼모로 벌이는 이들의 정치적 줄다리기에 글로벌 경제의 시름은 속절없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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