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수도 런던이 이달 중순부터 한 환경단체의 잇단 ‘게릴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단체가 출퇴근길 주요 도심 도로나 광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면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어서다. 이런 와중에 출근 시간대 열차를 세우는 등 과격 시위를 벌인 환경단체 운동가들을 격분한 시민들이 공권력 도움 없이 제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 17일(현지시간) 오전7시께 런던 동부 캐닝타운역. 이 역은 런던 남쪽 도심을 연결하는 지하철 주빌리라인과 도클랜드경전철라인(DLR)이 만나는 환승역이다. 영국의 새 금융중심지인 카나리워프와도 가까워 출퇴근 때마다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영국 석간 이브니스탠다드에 따르면 이날 양복을 입은 두 명의 운동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인파를 헤집고 정차된 지하철 차량 위로 올라갔다. 이어 ‘평소와 같은 출근은 죽음’(Business as usual, Death)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펼쳤다.
이들은 영국의 기후변화 방지 운동단체인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에 소속된 환경운동가. 멸종저항은 이달 중순부터 런던 트라팔가광장, 옥스퍼드서커스, 뱅크역 등 주요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잇달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가 기후 및 생태계 위기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환경운동가들이 열차 지붕에 오르자 열차 운행은 중단됐다. 출근열차를 기다리며 발만 동동 구르던 시민들은 결국 분노를 터트렸다. 한 남성이 뛰어올라 환경운동가 한 명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운동가는 시민을 발로 차며 저항했지만 열차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분노한 시민들이 그를 에워싸며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시민들은 환경운동가들을 향해 거센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이들의 행동은 제지됐다. 그럼에도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지하철 문에 붙어 열차 이동을 방해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영국교통경찰(BPT)은 열차 운행을 방해한 혐의로 캐닝타운역 등에서 시위를 벌인 운동가 8명을 이날 체포했다.
멸종저항측은 “시위대는 생태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정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환경단체가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출퇴근길에 열차 운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건 선을 넘은 행동이라는 시민들의 지적이 많다는 게 영국 현지 언론들의 설명이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도 “이들의 시위는 위험하고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법 테두리 안에서 평화로운 시위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멸종저항은 이달 중순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트라팔가광장에 수십개의 천막을 세우는 등 광장을 불법점거하기도 했다. 그러자 경찰은 이 단체에 집회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어 시위대를 즉시 해산하고, 시위대가 설치한 텐트 등을 철거했다.
런던경찰청은 이들 단체가 공공질서법을 위반해 집회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공공질서법에 따르면 경찰은 시위가 대중의 일상생활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이를 금지할 수 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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