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과세에 줄줄이 패소…정부 신뢰도만 떨어뜨려

입력 2019-10-18 17:09   수정 2019-10-19 01:12

종합화학기업 OCI는 2012~2013년 예상치 못한 ‘세금 폭탄’을 맞았다. 이 회사는 2008년 경영 효율화를 위해 자회사 DCRE를 세우고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적격 분할’ 제도를 활용해 법인세 이연, 취득·등록세 감면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국세청과 인천시가 뒤늦게 적격 분할이 아니라며 법인세 3840억원, 취득·등록세와 가산세 1710억원을 부과했다. OCI는 즉각 세금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냈다. 단일 기업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된 이 조세 소송에서 법원은 지난해 OCI의 손을 들어줬다. 총 5550억원의 세금 중 4590억원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 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무리한 과세라는 지적이 많았던 사건”이라며 “수년간 법적 다툼으로 낭비된 시간과 비용은 누가 책임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세청은 지난해 OCI를 포함해 170건(확정판결 기준)의 조세소송에서 패소했다. 패소율은 소송가액 기준 26.6%에 이르렀다. 국세청이 법 위반이라 판단해 징수한 금액 중에 27%는 ‘잘못된 처분’이란 판정이 나왔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세무당국이 납세자에게 돌려줘야 할 세금만 1조624억원이다. 패소율은 2017년(24.3%)보다 2.3%포인트 상승했다. 관세청의 패소율 역시 매년 높아지고 있다. 세무당국의 무리한 행정으로 기업 부담이 커지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처분을 남발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기업들이 부당 처분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공정위 패소율(일부 패소 포함)은 2016년 22.7%, 2017년 26.9%, 지난해 27.3% 등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5월까지 30.6%에 이른다. 주로 대기업을 겨냥한 ‘계열사 부당지원’ 사건에서 패소율이 높았다. 최근 5년간 확정 판결이 나온 부당지원 사건 행정소송 10건에서 공정위는 8건을 패소했다.

왜 이렇게 무리한 조사와 처분이 늘어날까. 대형로펌의 한 관계자는 “국회나 언론의 감시가 갈수록 세지자 국세청, 공정위, 관세청 등이 조사 건수를 늘리지 않는 대신 ‘큰 건수’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며 “이 과정에서 그동안의 법 해석을 뒤집고 과도하게 문제를 삼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고액 사건 패소율이 유난히 높은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홍일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소송가액 100억원 이상 사건의 패소율은 2016년 31.5%에서 2017년 35.1%, 지난해 40.5%까지 치솟았다.

근본적으로는 조사기관의 성과보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세청 출신인 한 세무사는 “추징금이나 과징금이 큰 사건을 처리한 직원에게는 특진 등 막대한 보상이 주어지는데 정작 이 사건이 법원에서 패소하면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며 “이런 구조가 계속되는 한 조사기관의 한탕주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민준/성수영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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