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인구감소야말로 가장 큰 경제 패러다임 전환

입력 2019-10-22 21:11   수정 2019-10-23 00:31

세계 경제 침체를 보는 시각이 다양하다. 국가 정책 실패라고도 하고 기술혁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고도 한다. 물론 미·중 간 무역마찰도 빼놓을 수 없다. 여러 요인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 및 인구구조의 변화를 경제 침체의 주원인으로 파악하는 학자가 늘고 있다. 내년이면 고소득 51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에 이른다는 암울한 소식도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잠재성장률은 떨어지고 경제성장률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구 감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인구 감소는 괜찮은 건가.

지난 15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7월 예상치 3.2%에서 3.0%로 낮췄다.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기타 고피나트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유달리 ‘불투명성’에 방점을 찍었다. 정책의 불투명성도 있지만 세계 수요의 불투명성도 크다. 미국 제조업도 뚜렷한 침체 국면에 들어서고 있는 마당이다. 고피나트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 서문에서 미·중 갈등으로 인한 무역 침체를 경제의 특수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중국의 전기차 보조금 금지와 유럽의 탄소 배출기준 강화 등으로 인한 자동차 시장 수요가 대폭 줄어든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의 도래에 맞춰 기존 내연기관차를 바꾸지 않고 관망하는 수요층이 늘어 자동차 시장이 침체에 빠졌다고 분석한 점도 이채롭다. 올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5.9%나 줄어들 전망이다.


日·러 등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하지만 무엇보다 IMF가 주목하는 세계 경제 침체의 본질적이며 구조적 원인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그에 따른 생산성 하락이다. 고령화는 이미 대부분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일본과 러시아, 그리스 등에서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평균 연령은 2020년 기준 48.4세에 이르는 노인국이다. 2030년대엔 50세를 훌쩍 넘어선다. 러시아와 한국, 독일 등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미국은 평균 연령 30대를 유지하면서 활발한 신진대사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또한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지금 중국의 평균 연령은 미국과 비슷하지만 10년 뒤엔 미국보다 많아진다. 1990년 중국의 평균 나이는 24세였다. 인구통계학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은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에서 “1990년 당시 중국의 15~20세 인구는 3억5000만 명이나 됐다”며 “이들이 낮은 임금으로 중국의 제조업 붐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40대로 바뀌었고 더 이상 낮은 임금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중국 제조업이 힘을 잃은 건 이후 중국이 ‘한 가구 한 아이’ 산아 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급격하게 낮아져 이들을 대체할 만한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도가 성장 국가로 주목된다. 인도는 2년 전부터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앞질렀다. IMF의 내년 전망치도 인도가 중국보다 1.2%포인트 앞선다. 강력한 인구 증가가 낳은 성과다. 인도의 평균 연령은 아직 28세다. 인구 대국이면서 가장 젊은 국가 반열에 들어 있다. 글로벌 자본과 공장들이 인도를 주시하는 이유다. 중국 제조업의 꺼진 등불이 인도에서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젊은 국가들은 여전히 활기차다. 젊은이들이 내뿜는 ‘밤문화’도 눈에 띈다. 여기에서 생산과 소비가 살아난다.

이민으로 美 여전한 '젊은 피' 국가

하지만 그 이면에는 노(老)대국들의 가쁜 숨소리도 존재한다. 젊은 층이 사라지고 노년층이 늘면서 경제활력이 줄어든다. 자이한은 “미국이 브레턴우즈 체제를 가동할 때 가담했던 국가들이 대부분 소비시장의 정점을 찍고 있다”며 고령화의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고 밝힌다. 그는 “장년층 비율이 높아지면서 대규모 잉여자본이 창출되고, 이로 인해 자본 비용만 커져 투자에 대한 고수익 가능성은 하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소비를 줄이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경제학의 과제였던 낮은 인플레이션과 저성장 상황에서도 실업률이 하락하는 현상이 모두 인구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일부 학자는 주장한다. 1930년대도 이런 주장은 있었다. 인구 증가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7년 이상 계속되자 앨빈 핸슨 교수는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자본 형성과 고용 증가에 깊은 회의를 가졌다. 총수요 부족으로 기업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면서 세계가 장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런스 서머스 미 하버드대 교수 또한 인구구조의 침체를 보면서 장기 저성장 국면에 빠져 있는 미국 경제를 두고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론’을 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도 고령화가 인플레이션을 막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령화 현실에 대응해 일본의 노동 관행과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령화가 인플레·실업률에 영향

하지만 일부 학자는 고령화가 소비를 줄이고 생산을 감소시킨다는 건 전혀 실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노인의 소비도 충분한 만큼 이들의 경제활동과 인플레이션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도 한다.

문제는 한국을 포함해 이런 인구구조를 가진 국가들의 향방이다. 필요한 노동력 공급 측면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경제 성장을 지속하려면 노동생산성 향상이 필수 불가결하다. 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 IMF가 제안하는 처방 역시 이민의 활용이다. 하지만 이민은 임금을 끌어내리면서 각종 사회문제를 유발한다. 미국도 멕시코 이민을 적극 막고 있으며 유럽 각국도 난민에 대해 난색을 보인다.

고급 이민자 통해 수요 창출해야

고용구조가 바뀌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지금 노년층이 일반 서비스직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여성 노동 참가율이 늘고 있는 것도 단면이다.

공급 측면의 대안만으로 고령화 사회를 대처할 수 없다. 기술혁신으로 세계 글로벌화가 한층 당겨진 마당이다.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 노동의 공급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핵심은 수요 측면에서의 변화다. 돈 많은 이민자들이 한국에 몰려와 주택을 구입하고 차를 구매하면서 수요를 확대하는 것도 경제활력을 살리는 방법이다. 이미 미국은 세계 대학층 수요를 끌어당기고 있다. 일본이 관광산업에 적극적인 것도 이런 이유다. 공급이나 수요 모두 외국인의 수용이 필요하다. 한국이 매력있는 국가가 되려면 고용이 유연해져야 하고 사회의 각종 규제도 없어져야 한다.

경제 침체를 정책 실패로 보는 이가 많다. 인구 문제만큼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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