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한 판을 짜라. 이것이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상대보다 협상력이 클 때 판은 유리해진다. 협상력을 결정하는 제1의 요인은 ‘배트나(BATNA :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다. 이는 ‘협상이 결렬됐을 때 취할 수 있는 대안’을 말한다. 협상이 깨져도 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면 협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협상력을 키우려면 협상이 무산됐을 때를 대비해 차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대우자동차 매각 협상은 배트나가 마련되지 않아 큰 손해를 봤다. 1999년 8월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같은 해 12월 제너럴모터스(GM)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할 당시 제시 가격은 55억달러였다. 이후 국제입찰로 바뀌어 5개사가 응했는데 포드는 70억달러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드는 내부사정으로 입찰을 포기했다. 그렇게 되자 단독 응찰한 GM은 12억달러를 제안했다. 이후 GM에 끌려다니다가 대우자동차는 4억달러라는 헐값에 매각됐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당시 국내 업체들이 인수의향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GM에만 매달렸다. 반드시 해외 업체에 매각하겠다고 공언한 정부 탓에 GM만이 유일한 협상 대상으로 남고 말았다. 배트나가 없었기 때문에 대우자동차는 헐값으로 매각될 수밖에 없었다.
협상결렬 대안을 준비하라
한 발전업체가 산업용 보일러 구입을 위한 입찰을 시행했다. 이 업체는 최대 4700억원까지 낼 의사가 있었다. 가장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국내 중공업 회사는 5000억원을 요구했다. 산업용 보일러는 일본 업체들의 기술력이 우수했으나 납기일이 짧은 데다 환율 변동이 심하다는 이유로 입찰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발전업체가 납기를 연장하고 엔화 고정환율제를 적용하자 일본 업체들이 응찰하기 시작했다. 중공업 회사는 결국 가격을 낮췄고 발전업체는 4500억원에 보일러를 구입할 수 있었다. 배트나를 개발, 협상력을 키운 결과였다.
배트나를 만들기 어렵다면 제3자의 힘을 빌려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 1991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미군을 파병해 응징하려 했다. 하지만 막대한 전쟁 비용과 미군의 희생이 예상돼 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시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 등의 우방국과 유엔의 지원을 확보해 국제적인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아랍 합동군을 포함, 28개국이 참가하자 의회도 결국 파병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1998년 홍콩 정부는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홍콩 정부는 테마파크 건설에 소요되는 토지는 50년 임차 조건을 보장하고 도로, 부두, 교통환승시설, 경찰서, 소방서, 배수 및 하수처리 시설 등을 포함한 인프라 건설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디즈니랜드는 테마파크 건설에 소요되는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요구하며 여차하면 다른 곳에 진출하겠다고 압박했다. 홍콩 정부는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를 동원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중시하는 디즈니랜드가 과도한 경제적 이익에 매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기업 이미지 타격을 우려한 디즈니랜드는 과도한 요구사항을 철회하고 협상에 임했다.
협상할 때 자신감 없거나 매달리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최악이다. 그런 기미를 보이면 상대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밀어붙이고 압박해 온다. 협상력이 상대보다 약하다고 생각될 때는 배트나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3자를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에 임할 수 있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라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첩경은 철저한 준비에 있다. 중요한 협상에 임할 때는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 하지만 준비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협상을 효과적으로 준비하는 법을 살펴보자. <그림>에 나와 있는 협상준비표를 하나씩 채워나가면 체계적인 준비가 가능하다. 협상준비표는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양식이다. ‘나’에 관한 정보는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적으면 되고, ‘상대방’에 관한 정보는 추정해서 적는다. 상대를 만날 수 없다면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정보를 얻어 채우면 좋다.
‘협상 안건’에는 협상에서 다룰 이슈를 적으면 된다. ‘요구’에는 상대가 요구하는 것과 내가 요구하는 것을 적는다. ‘직접적 욕구’에는 상대와 내가 특정한 요구를 하는 이유나 동기를 쓴다. 상대방의 ‘간접적 요구’에는 상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혜택이나 위험이 무엇인지를 적는다. 나의 ‘간접적 요구’에는 이 협상에서 추가적으로 얻기를 원하는 것을 쓴다. ‘통합적 해법’에는 상대의 욕구와 나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적는다. 아울러 상대에게 추가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이나 리스크 해소방안을 넣으면 된다.
‘객관적 기준’은 서로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공정한 기준을 적는다. 상대방의 배트나에는 협상이 결렬됐을 때 상대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을 쓰고, 나의 배트나에는 협상이 깨졌을 때 취할 수 있는 차선택을 적는다. ‘제3의 힘’에는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자가 누구인지 쓴다. 사실과 논리 부분에는 항목별로 사용할 수 있는 근거 자료와 논리적 설명을 표기한다.
이처럼 협상준비표를 적어보는 것만으로 체계적 준비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협상은 여러 차례 진행되므로 한 번의 협상이 끝날 때마다 협상준비표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나가면 된다.
권상술 피플앤비즈니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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