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2018 노벨문학상 작가 대표작…"멈추는 자는 화석이 된다"

입력 2019-10-24 17:57   수정 2019-11-23 00:31

“내 모든 에너지는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버스의 진동, 자동차의 엔진 소리, 기차와 유람선의 흔들림.”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사진)가 쓴 장편소설 <방랑자들> 초반에 나오는 문구다. 이 두 문장은 소설 전반을 설명한다.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부문 수상작인 <방랑자들>은 여행, 떠남과 관련된 다양한 길이와 형식의 글 100여 편을 씨실과 날실을 엮듯 촘촘하고 긴밀하게 구성해 펼쳐낸다. 이야기 대부분은 정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어떤 장소나 사물에 얽매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를 쉼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활동인 ‘여행’이야말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관습과 타성에 젖어 익숙한 것만 찾는 인간은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순응하며 더 이상 모험이나 행복을 갈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휴가를 떠났다가 느닷없이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남자, 죽어가는 첫사랑으로부터 은밀한 부탁을 받고 수십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하는 연구원, 프랑스에서 사망한 작곡가 쇼팽의 심장을 몰래 숨긴 채 모국 폴란드로 돌아온 쇼팽의 누이…. 소설 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인물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모두 어딘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쳐서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다다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여행은 단순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대륙을 건너는 물리적 이동이 아니다. 소설은 이들이 각자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 묻어뒀던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 시련과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방랑자들>은 장편소설의 긴 호흡 대신 단편이나 에세이, 강연록 등을 읽어가는 경쾌한 느낌을 준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쓴 에세이도 있고, 기차역에서 무릎 위에 책을 받쳐놓고 쪽지에 휘갈겨 쓴 단상도 있다.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단절된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스쳐 지나가듯 만나거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점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즈음, 다음 에피소드의 공간적 배경에 대한 단서가 은밀히 등장해 마치 추리소설 속 퍼즐을 맞추는 듯한 긴장감도 준다. 가령 뉴질랜드를 발견한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의 에피소드 다음에 호주 어느 해변에서 길을 잃고 죽음을 맞은 고래 사건이 언급된다. 그 뒤로 호주로 짐작되는 나라로 이주한 폴란드 연구원 사연이 등장한다.

작가는 육체에 대한 탐험도 시도한다. 정치적 망명, 생계형 이민, 출장과 휴가 등 목적과 이유가 다른 경계 간 이동을 실현하는 주체가 바로 인간의 몸이기 때문이다. 이런 탐험을 통해 정신은 권태나 무감각에서 벗어나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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