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성난 農心'…대기업 기부금 늘려 달래겠다는 정부

입력 2019-10-25 17:21   수정 2019-10-26 00:39

정부는 25일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때부터 개발도상국 혜택을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쌀 등 민감 품목에 최대 513%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매기고 있지만 WTO 농업협상이 열리면 이런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정부는 성난 농심을 달래기 위해 1조원을 목표로 조성 중인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대기업 출연을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정부의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은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중국 등을 겨냥해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가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10월 23일까지 포기 여부를 결정하라고 압박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해도 상당 기간 농가 피해가 없는 점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의 통상 압력이 거세질 가능성이 큰 점 등을 고려해 전체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농가를 달래기 위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기부를 많이 한 기업에 동반성장 분야 평가 시 가산점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확대하기로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조만간 정부와 국회의 기금 출연 ‘압박’이 시작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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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익 위해 WTO 개도국 지위 포기"…농민 돕겠다며 또 '현금 보상'만 내놔
車 등 통상혜택이 실익있다 판단…개도국 고집 땐 美 보복 우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기로 한 것은 미국과의 통상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많다. 미국이 수입차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혜택이 농업 부문에 국한된 개도국 지위를 계속 주장하다가는 주력 산업인 자동차 등 제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기업들로부터 농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더 걷겠다는 입장이어서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통상갈등 피하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한국 등 부자 나라들이 WTO에서 개발도상국 혜택을 못 받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말했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농업과 기후변화 부문 외에는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하고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왔다.

미국 정부는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 수 있다’는 미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차량 및 부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높은 관세율을 적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익 차원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농민단체 강력 반발

정부는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이는 미래의 WTO 협상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농업 부문의 기존 혜택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33개 농민단체는 이날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가 열린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농업을 미국의 손아귀에 갖다 바치겠다는 것”이라며 “강력한 투쟁으로 응답하겠다”고 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정부는 당장 피해가 없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새로운 WTO 협상이 타결되면 결국 농업 보조금이 깎인다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정부는 이날 공익형 직불제 도입과 농업 재해 복구비 단가 인상, 청년농 지원 확대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현재 쌀에 집중적으로 지급하는 변동직불금은 WTO 규제 대상으로 연간 1조4900억원만 지원할 수 있으나 작물에 상관없이 지급하는 공익형 직불금은 규제대상이 아니어서 한도가 없다. 정부는 공익형 직불금 도입을 위한 법개정 작업과 함께 내년도 예산안에 2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정부 “기업 돈 더 내라”

정부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조속히 확충될 수 있도록 기업 출연을 활성화하겠다”고도 했다. 이 기금은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당시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농가 지원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2017년부터 모금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해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기업이 미르재단에 기부금을 낸 게 문제가 되자 돈이 모이지 않았다. 매년 1000억원을 조성하겠다는 정부 목표대로라면 올해 말까지 3000억원을 모아야 하지만 이날까지 총 571억원만 걷혔다. 이 중 91%인 520억원은 공기업이 낸 것이고 대기업 출연금은 45억원에 불과하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전 정권에서 정부 요구로 기부금을 냈다가 총수들이 옥살이까지 한 경험이 있다”며 “기업들로서는 또 돈을 내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상헌/이태훈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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