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자회사 설립 허용해 의사들 창업 길 터줘야"

입력 2019-10-30 17:20   수정 2019-10-31 02:46

“세계 최고 수술 실력을 갖춘 한국 의사들이 수술하면서 사용하는 의료기기는 모두 외국산이다. 병원 내 연구개발 조직을 만들어 의료기기 등의 기술개발을 독려해야 한다.”

“완성되지 않은 의료기술은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병원들이 의료기기, 건강기능식품 등을 개발하면 환자들의 불필요한 부담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지난 29일 열린 헬스케어 미래포럼에서 국내 연구중심병원에 의료기술협력단을 허용하는 방안을 두고 오간 공방이다. 보건복지부는 병원에서 나온 연구 성과를 의료기기, 의약품 개발로 잇기 위해 2013년부터 연구중심병원을 지정·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10개 병원이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들 병원조차 창업을 위한 별도 조직을 구성하지 못한다. 국내 병원은 자회사를 세울 수 없도록 한 의료법에 막혀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의료기관에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면 영리화될 것이라는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에 막혀서다.

이날 포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단체 등을 대표해 나온 유철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개정안을 보면 병원이 지주회사 아래 영리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 지분의 80%는 외부 투자도 할 수 있다”며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상품화하려는 욕구만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들이 자회사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이곳에서 만든 의료기기, 건강기능식품 등을 환자들에게 판매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중심병원에서 기술 창업한 의료진 생각은 달랐다. 연구 성과를 토대로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의 상업적 이익만을 위해 병원이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송해룡 고대구로병원 교수는 “해당 병원에서 개발한 의료기기는 쓰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책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시민단체 등을 설득하기 위해 연구중심병원에서 개발한 기술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평가하는 지표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연구중심병원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병채 전남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연구중심병원 상당수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며 “지정제에서 인증제로 전환해 지역 병원들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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