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집'에 대한 다양한 꿈을 꿨다. 형제와 비좁은 방을 같이 쓰거나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을 때면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이렇지 않다'며 머릿 속으로 집을 그려보곤 했다.
책 속에서도 집을 꿈꾸게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이다. 숲 속에 버려진 남매가 과자집을 발견하게 되지만, 친절했던 집주인은 마녀다. 남매는 마녀를 해치우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이야기만 보면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자는 교훈을 줬지만, 어린 눈길을 사로잡은 건 책에 그려진 과자집이었다. 과자집은 의식주(衣食住)에서 옷만 빼고 모든 걸 해결해주는 집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이가 썩는다며 먹지 못하게 하는 과자를 양껏 먹을 수 있는 공간이라니…. 어린 마음에도 설레면서 동화를 봤다.
어른이 되고나서 잊혀졌던 과자집이 다시 떠오른 건 한남3구역 설계가 공개되면서다. '현실에 가능할까' 싶은 조감도가 하나 둘씩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마녀가 지은 과자집을 떠올렸다. '추가적인 부담없이 이런 집들이 가능할까'하면서도 내심 부럽기도 했다.
한남3구역 재개발은 조합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핫이슈가 됐다. 현대건설(단지명 디에이치 더 로얄), GS건설(한남자이 더 헤리티지), 대림산업(아크로 한남 카운티) 등 국내 내로라 하는 대형 건설사 3개사가 참여했다. 이들 건설사와 협업을 통해 들어오는 대기업과 관련 회사만 해도 수십여개다. 외관은 물론이고 내부와 각종 서비스까지 포함됐다.
한남3구역은 시공사 입찰 마감 전까지는 과도한 마케팅 활동이 눈살은 찌푸리게 하더니, 이제는 무리한 설계가 도마에 올랐다. 화려한 조감도와 설계들을 보고 있자면 '일단 따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사업제안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3개사 중 대부분이 '혁신설계'라는 명분으로 세대수가 늘리거나 기준과는 차이나는 제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정부도 팔을 걷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내주부터 합동점검에 착수한다. 서류점검과 현장방문 등 약 3주간에 대대적인 특별점검에 들어간다. 불법이나 위반사항이 적발될 경우 행정처분이나 시정명령,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조합과 건설사들은 이번 점검이 수주전에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사실 수주전에 변수는 건설사들이 내놓은 제안들이다. 하지만 한남3구역은 '불법 혹은 위반 여부'가 변수가 됐다. 이로 인해 서울시가 사업시행변경인가를 내주지 않거나, 시공사 입찰이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다. 행여라도 시공사의 자격이 박탈되거나 재입찰까지 내몰리게 된다면, 사업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서울시의 조치를 건설사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조합이 서울시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법정 공방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어떠한 경우의 수건간에 사업이 지연되면, 그만큼 사업비나 추진에 있어 부담을 안고 가야한다. 문제의 시작점은 건설사의 과당경쟁과 이로인한 무리한 설계변경이었지만, 실제 피해는 조합원들이 고스란히 받게 될 수 있다.
실제 한신4구역 재건축(시공사 GS건설), 미성·크로바 재건축(시공사 롯데건설), 방배5구역 재건축(시공사 현대건설) 등은 서울시가 설계 변경 허락을 해주지 않아 사업이 당초 일정보다 지연됐다.
모두가 꿈꾸는 집을 현실에서 짓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돈을 내지 않아도 배불리 먹고 편히 지낼 수 있는 과자집은 더 그렇다. 마녀가 짓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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