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월가 "미·중 1단계 합의는 서명될 것"

입력 2019-11-01 08:19   수정 2019-11-01 13:38


3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개장 직후부터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블룸버그에서 새벽에 보도한 뉴스가 확산되면서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블룸버그는 익명의 중국 관료들을 인용해 양국이 ‘1단계 합의’에 서명하기 위해 마무리 논의를 하고 있지만, 이후 최종적·포괄적 합의 가능성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은 변덕이 심한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이번 1단계 합의도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날 미 중앙은행(Fed)이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애플과 페이스북의 3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왔지만 시장은 하루종일 1% 안팎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시장이 비틀대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1단계 합의 서명을 위한 새 장소 선정에 들어갔다. 곧 발표될 것”이라며 양국 합의에 이상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APEC 회의를 취소한 칠레 대신 다른 곳에서 서명하겠다는 것이지요. 시장은 하락폭을 소폭 만회했지만 다우 지수는 140포인트, 0.52% 하락했고 S&P500 지수는 0.3%, 나스닥 0.14% 내린 채 마감했습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런 잡음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양측이 포괄적이고 최종적인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곳이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미봉책 수준인 이번 1단계 합의에는 서명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중국이 1단계 합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국 상황을 볼 때 이번엔 일단 무역갈등을 어떻게든 덮고 갈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한 중국의 수출 및 경기 둔화, 화웨이 등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등 공식적인 것 외에 그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①중국 은행의 부실대출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 지방은행들은 관치에 의해 기업들에게 ‘무작정’ 대출을 해왔습니다. 경기 둔화로 기업 부도가 급증하면서 그런 대출은 지금 부실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재무제표를 공개하고 있지 못한 지방은행만 현재 19곳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들 은행의 자산만 64조5000억위안(약 1690조원)에 달합니다.


이미 이 중 지난 5월 바오샹은행이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국유화됐으며 이후 진저우은행, 헝펑은행 등이 줄줄이 구조조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3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허난성 소재 이촨농촌상업은행에서 뱅크런(대규모 자금 인출)이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파산 소문이 위챗에서 퍼진 탓입니다.

문제는 이들뿐 만이 아닙니다. 중국 은행들은 높은 이자를 받아 손실을 메꿔왔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제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해야할 판입니다. 은행들은 더욱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②채권 발행 더 힘들어진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부채 문제를 집중 공격하고 있습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금융사들이 운용하는 채권, 주식 벤치마크에서 중국물을 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월가에서는 주식보다 채권 벤치마크에서 먼저 중국을 빼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관측합니다.


2조5000억원 규모의 자산이 추종하는 블룸버그 바클레이 캐피탈 글로벌 종합 채권지수는 지난 4월 중국 채권을 편입했습니다. 이렇게 편입되면 전세계 패시스 채권 펀드들은 편입 비중만큼 중국 채권을 사들여야 벤치마크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블룸버그가 예고한 비중이 6%까지 높아지면 1500억달러가 중국에 유입되는 겁니다.

다른 벤치마크들도 2017년부터 중국물 편입을 검토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9월말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 세계국채지수(WGBI)는 중국물 편입을 또 다시 연기했습니다. 또 JP모간의 거버먼트본드펀드는 내년 4월 편입을 추진해왔는데,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이를 결사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루비오 의원은 시장접근성, 투명성 등을 들어 편입이 불가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월가에서는 미국 정부도 이를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국채 금리가 낮아지고 있지만 중국의 국채 금리는 최근 더 오르고 있습니다.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말 연 3.31%를 기록해 지난 5월 이후 최고로 올랐습니다. 중국의 지방정부 채권은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게 2조위안(331조원)에 달합니다. 올해보다 58%나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연기금 펀드의 중국 투자를 막고, 중국 기업들의 뉴욕 증시 상장을 차단할 것이란 뉴스도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중국을 향해 흘러가는 금융돈줄을 끊으려는 겁니다.


③유럽 투자자들, 중국에 등 돌렸다

월가에서는 ESG 바람이 강합니다. 투자할 때 환경(E) 사회적 책임(S) 지배구조(G) 등을 따지는 겁니다.

이런 ESG에 가장 열심인 투자자가 유럽계입니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 속에서 유럽국가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러시아와 손잡아선 별다른 경제 효과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유럽계 투자자들이 최근 급격히 중국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유럽계 투자자들이 홍콩 시위 사태를 지켜보고선 다시 한번 중국의 후진성을 깨닫고 있다”며 “중국에 더 투자를 하기보다 돈을 빼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시위 진입 과정에서의 폭력과 시위자를 향한 백색테러 등을 보고는 경악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내부의 부채 문제는 커지고 있는데, 전세계에서 들어오던 돈줄은 점점 끊어지고 있는 판입니다.

결국 1단계 합의 등 일단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월가 시각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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