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감축’ 대신 ‘자율 감축’
정부 판단의 기초가 되는 대학기본역량진단은 각 대학이 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 등 사회 변화에 맞게 역량을 갖추고 혁신하고 있는지 정부가 진단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2015년부터 3년 간격으로 대학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원 감축에 활용해왔다. 정부는 평가 등급에 따라 정원 감축을 차등 권고했고, 재정 지원과 연계해 추가 감축을 유도했다. 이는 5년간 대학 정원 5만여 명을 줄이는 결과를 냈지만, 획일적 평가로 대학 자율성이 침해됐다는 불만 등이 제기됐다.
교육부가 내놓은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 시안’에 따르면 교육부는 앞으로 정원 감축 규모와 방법은 대학이 알아서 정하도록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그 과정이 적정한지 지켜보면서 혈세를 지원할 만한 대학인지 평가할 계획이다. 대신 평가에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2018년 진단에서는 충원율 배점이 전체에서 13.3%를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20%까지 비중을 높였다. ‘유지 충원율’ 개념도 도입했다. 대학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학생 충원율을 계속해서 충족했을 때만 계속해서 재정을 지원받을 수 있다. 교육부가 ‘강제 감축’ 대신 ‘자율 감축’으로 정책 기조를 바꿨지만 사실상 입학정원 감축 압박은 더 강력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부가 대학들에 입학정원 감축을 유도하는 이유는 당장 내년부터 대학에 진학할 학생이 모집 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대입 역전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재수생 수, 대학진학률 등을 종합해 추산하는 2020년 ‘대입가능자원’은 올해(52만6267명)보다 4만6000여 명 줄어든 47만9376명이다. 2018학년도 대학 정원인 49만7218명보다 적다. 2024년에는 대입가능자원이 37만3470명으로 줄어든다. 대학 정원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2024년에는 정원 대비 입학생이 12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학들
대학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11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정부 재정 지원과 연계돼 있는 기본역량진단을 거부할 수 있는 학교는 사실상 없다”며 “대학들은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앞다퉈 정원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입학정원을 감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등록금 수입이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입학정원 감축은 수입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재정 지원을 받으려면 입학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입학정원을 줄인 만큼 재정이 악화되다 보니 대학으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지방대부터 정원 감축 나설 듯
시안대로 대학기본역량진단이 시행되면 지방대부터 먼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정원 감축이 대학 자율에 맡겨졌는데 수도권 중심으로 서열화된 입시 구조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방대 부담을 덜기 위해 지역대학 배려 장치를 강화했다고 설명한다. 일반재정지원 대상 대학을 선정할 때 90%를 5개 권역 기준으로 우선 선정하고, 나머지 10%에서 전국 단위로 선정하기로 했다.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취업률 등 핵심 지표의 만점 기준을 각각 수도권·비수도권 또는 권역별로 분리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이 있는 지역 여건이 진단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안을 받아든 지방 대학들의 생각은 다르다. 권역별로 평가하더라도 상황이 비슷하게 어려운 지방대가 살아남기 위해 경쟁적으로 입학정원을 줄이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지방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것이라는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고 말했다.
NIE 포인트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입학정원 감축이 대학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자. 내년부터 ‘대입 역전현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토론해보자.
박종관 한국경제신문 지식사회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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