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 1일 오후 4시55분
SK네트웍스가 운영하고 있는 직영 주유소 310여 곳이 코람코자산신탁과 현대오일뱅크 컨소시엄에 넘어가게 되면서 국내 주유소업계의 순위가 뒤바뀔 전망이다. ‘만년 3위’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주유소 310여 곳의 간판을 자사 브랜드로 바꿔 달면 경쟁사 GS칼텍스를 제치고 단숨에 업계 2위로 치고 올라간다.
현대오일뱅크, 단숨에 2위로
1일 SK네트웍스와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에 매물로 나온 310여 곳 주유소 중 201곳은 SK네트웍스가 소유권을 갖고 있고, 나머지 120여 곳은 SK네트웍스의 브랜드를 빌려 운영하는 임차 주유소다.
이번 인수전은 독특하게 재무적 투자자(FI)가 자금을 대서 주유소를 가져가되, 주유소 영업을 할 수 있는 정유사와 짝을 지어 컨소시엄 형태로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코람코자산신탁은 국내 정유사 현대오일뱅크를 선택했다.
국내 주유소는 오랫동안 1위 SK(SK에너지·SK네트웍스), 2위 GS칼텍스, 3위 현대오일뱅크 점유 구도를 유지해 왔다. 이번에 매각된 주유소 비중(6월 말 기준 2.2%)은 작지만 업계에서 이번 매각을 크게 주목한 이유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폴사인(석유제품 상표 표시 고시) 제도가 2008년 폐지됐지만 300개가 넘는 주유소가 한꺼번에 브랜드를 갈아치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현대오일뱅크는 2위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 처지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SK네트웍스는 신사업 자금 마련
SK네트웍스는 2000년 SK에너지판매(현 SK에너지)에서 주유소 운영사업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SK에너지에 비해 작은 규모 탓에 SK네트웍스는 주유소 쪽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8년 폴사인 제도가 폐지돼 SK이노베이션 기름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희석되고 알뜰주유소의 등장 등으로 경쟁이 격해지면서 SK네트웍스 내에서 주유소(MOST) 부문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작년 이 부문 매출은 1조4000억원을 넘었지만 영업이익은 200억원 수준에 그쳤다. 올 상반기 매출도 신통치 않았다.
SK네트웍스는 “지속 성장을 위한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전략적 의사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매각금액과 고용 안정, 거래 확실성 등을 고려해 코람코자산신탁과 현대오일뱅크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SK네트웍스에는 ‘계륵’이었지만 저금리 상황에서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고 있는 부동산·인프라 펀드와 사모펀드, 국내 연기금 등 투자자에게는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코람코자산신탁과 맥쿼리자산운용, 국내 2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까지 입찰에 뛰어들었다. 향후 10~15년간 큰 부침 없이 이익을 낼 수 있고, 도심 내 알짜 자산은 부동산 개발 이익 등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평가였다.
코람코는 ‘주유소 리츠’ 상장 복안
1조2000억~1조3000억원에 이르는 인수 비용은 기본적으로 코람코자산신탁이 댈 예정이다. 상업용 건물이나 할인점, 물류센터 위주로 투자해온 코람코자산신탁에도 주유소까지 투자 대상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코람코는 이번에 인수하는 주유소 중 SK네트웍스가 소유하고 있으면서 영업수익률이 떨어지는 10여 개 주유소를 골라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개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주유소는 편의시설, 상업시설 등을 추가해 복합 주유소 형태로 만들어 가치를 높이고, 이를 묶어서 ‘주유소 리츠(REITs·부동산투자 전문 뮤추얼펀드)’로 설립해 상장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성사된다면 아시아 최초가 될 전망이다.
SK네트웍스와 코람코-현대오일뱅크 컨소시엄은 내년 상반기 최종 거래를 완료할 예정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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