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사양산업이 어딨어?"

입력 2019-11-04 18:23   수정 2019-11-05 00:15

섬유·패션은 1990년까지만 해도 연간 148억달러어치를 수출하는 ‘효자산업’이었다. 이후 중국 등의 저가 공세에 밀려 ‘사양산업’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용 섬유에서는 효성과 코오롱 등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국내 섬유 제조업체 수는 4만8000개, 종사자 수는 30만 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특수 섬유로 고기능성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스포츠 의류 전문기업인 애플라인드는 숨구멍이 있는 얇은 원단을 앞뒤로 코팅해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헝가리 빙상팀이 이 업체의 빙상복을 입고 남자 계주 금메달을 따 화제를 모았다.

한때 내리막길을 걸었던 봉제 분야에서도 ‘K패션’ 스타트업들이 동대문시장을 거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 임가공 단계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접목하며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있다. 연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대형 온라인 쇼핑몰 기업까지 등장했다.

신발산업도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로 생산공정을 자동화하고 수요자 맞춤형 제품으로 브랜드를 특화하면서 판로를 넓히고 있다. 2009년 3억7510만달러까지 떨어졌던 수출이 지난해 5억769만달러로 회복됐다. 1970년대 호황을 누리다 침체된 가발산업 또한 3차원 스캐너와 형상기억 기술 등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인쇄업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주문형 인쇄 전문업체인 마플은 디지털 프린팅 기술을 적용한 자동생산과 온라인·모바일 주문편집으로 소량 다품종 제품을 제작해 유럽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배송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 기업 레드프린팅은 ‘아이돌 상품’을 특수 인쇄기로 생산해 일본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사양산업은 저무는(斜) 해(陽)처럼 기울어가는 산업을 뜻하지만, 기울기를 따지자면 저녁에 지는 해와 아침에 뜨는 해가 같다. 무슨 일이든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진다.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기업가들은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고 얘기한다. 영국 작가이자 평론가인 존 러스킨도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영국 날씨를 탓하지 않고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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