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400만 대. 한국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온 수치다. 이 선이 올해 무너질 판이다. 한국GM과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중견 완성차 3사의 오랜 판매 부진과 구조조정, 고질적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 등이 맞물린 결과다.
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 7개사는 올해 1~10월 326만6698대의 차량을 생산했다. 최악의 부진을 겪은 지난해 같은 기간(328만1211대)보다도 0.4% 줄었다. 이 추세를 고려하면 올 생산량은 390만 대 선에 그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351만 대) 후 10년 만에 연 400만 대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내몰렸다.
‘생산절벽’에 맞닥뜨린 이유는 복합적이다.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지난해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까지 맞물리며 2년 넘게 고전해온 후유증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올 들어 중견 완성차 3사가 구조조정에 나선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르노삼성과 한국GM 노동조합의 ‘습관성 파업’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국내 자동차산업 기반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자동차 부품사 대표는 “부품업체마다 연 400만 대 체제에 맞춰 설비투자를 늘려 왔다”며 “생산량이 더 줄면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차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대표 선수는 메르세데스벤츠다. 지난달 8025대를 팔아 수입차 브랜드 중 사상 처음으로 월 판매량 8000대 고지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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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스몰 3社' 14년 만에 최악
'생산절벽'…2년새 20만대 줄어들 판
한국 자동차산업의 ‘허리’인 한국GM과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중견 완성차 3사가 휘청이고 있다. 내수 부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수출 물량도 갈수록 줄고 있는 탓이다. 이들 3개 회사가 올해 생산하는 차량 대수는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이 될 전망이다. 내년 이후는 더 문제다. 마땅한 신차가 보이지 않는 데다 해외 본사가 배정하는 수출 물량 확보도 쉽지 않아서다.
10년 전보다 줄어든 생산량
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GM과 르노삼성, 쌍용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10개월 동안 58만9744대를 생산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66만8596대)보다 11.8% 줄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올해 3개사의 생산량은 70만 대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2년 전만 해도 이들 3개 회사는 90만 대 넘는 차량을 생산했다.
생산량이 가장 많이 감소한 곳은 르노삼성이다. 올 1~10월 누적 생산량이 13만747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8만2624대)보다 23.3% 급감했다. 로그(닛산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 수탁 계약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다. 닛산은 올해 초 르노삼성 노조가 파업을 거듭하자 로그 위탁물량을 연간 10만 대에서 6만 대로 축소했다.
한국GM의 생산량도 8.0% 줄었다. 군산공장을 폐쇄한 지난해가 ‘바닥’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올해 생산량은 더 떨어졌다. 지난해 극한의 노사 갈등으로 소비자 신뢰가 낮아진 데다 영업망까지 붕괴된 결과다. 올해는 신차도 내놓지 못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연 70만 대 넘게 생산하던 한국GM이지만, 올해는 35만 대를 간신히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다.
쌍용차의 생산량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명가’로 불렸지만,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경쟁력 있는 신모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시장을 뺏겼다. 올해 코란도와 티볼리 등의 신차를 공개했지만,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부품사 줄도산 가능성”
내년에는 더 큰 위기를 겪을 공산이 크다. 르노삼성의 로그 수탁생산은 올해 말 끝난다. 연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물량이 사라지게 된다. 르노삼성은 크로스오버차량 XM3의 유럽 수출물량을 따내기 위해 프랑스 르노 본사와 협의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물량을 어렵게 따내더라도 공정 정비 기간 등을 감안하면 내년 말에야 양산이 가능하다. 결국 내년 생산량은 10만 대 수준(2018년 20만 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GM은 당분간 신차 없이 버텨야 한다. 내년 초 나올 준중형 SUV 트레일블레이저를 제외하면 2022년까지 굵직한 신차는 없다. 이 회사는 트래버스와 콜로라도 등 미국산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는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이들 차량은 국내 생산량에 포함되지 않는다. 본사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고위임원은 최근 “한국GM 노조가 파업을 계속하면 한국에서 생산할 물량 일부를 다른 국가 공장으로 이전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GM 노사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
쌍용차는 신차 개발 일정을 연기했다. 경영상황이 나빠지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신차 부재가 판매 및 생산 감소를 더욱 부추겨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견 자동차 3사의 생산량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한국 자동차산업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들 회사와 거래하는 부품회사가 줄도산하면서 차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품사 관계자는 “르노삼성과 한국GM의 협력업체 대부분은 간신히 버티는 형편”이라며 “자동차산업 특성상 부품사 한 곳만 무너져도 완성차 생산라인이 멈춰설 수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감원 사태가 불가피해졌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생산량이 큰 폭으로 줄면 생산직 근로자 일부가 유휴인력이 된다. 르노삼성과 쌍용차 등은 이미 인력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하는 중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중견 3사의 내년 생산량은 올해보다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회사에 따라 생산직 인력 절반가량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장창민/도병욱/박상용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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