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를 표방하는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가 이달 1일 시작됐습니다. 소비자 반응이 작년과는 확 달라졌습니다. 내수 침체가 심화했는데도 코세페 개시를 맞아 지갑을 연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분위기를 띄운 건 신세계였습니다. 지난 2일 하룻동안에만 신세계그룹의 유통망에서 600여만 명이 ‘코세페 쇼핑’에 나섰고, 일매출이 4000억원을 넘었지요. 이마트 등 일부 매장에선 문을 열자 마자 먼저 물건을 집으려는 쇼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미국 블프 때나 볼 수 있던 광경입니다.
전자상거래 강국답게 온라인도 뜨겁습니다. 이달 초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50~100% 급증한 온라인 몰이 적지 않습니다. 얼어붙었던 소비 심리가 조금은 바뀌었다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부터 코세페 행사가 민간 주도형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정부는 일찌감치 “올해 행사부터 민간에 맡기겠다”고 선언했지요. ‘박근혜 정부 때 만든 행사’라는 꼬리표 때문에 소극적이던 정부가 아예 손을 떼기로 한 것이란 지적이 나왔습니다.
민간 중심의 행사 추진·실무단이 꾸려졌고, 유통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행사시기 및 기간 등을 결정했습니다. 오는 22일까지 진행하는 행사에 총 650여개 업체가 참여하기로 했구요. 정부가 뒤로 빠졌는데도 참여업체 수가 오히려 작년 대비 150여 곳 늘었습니다. 코세페 사무국 관계자는 “정부 주도형 행사일 때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힘든 구조였다”며 “알아서 하라고 하니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고 했습니다.
코세페 개막 직전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갑자기 “가격할인 행사 때 백화점이 최소 50% 이상 비용을 부담하라”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죠. 백화점들이 ‘코세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반발하자 공정위는 막판에 단속 시기를 내년으로 늦추겠다며 한 발 뺐습니다. 그런데 이 논란 때문에 백화점들은 행사를 준비할 시간을 놓쳤습니다. 다른 온·오프라인 유통 매장과 달리 유독 백화점만 썰렁한 배경입니다. 범정부 차원에서 소비 진작을 위해 팔을 걷어부쳐야 하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왜 행사 직전 ‘찬물을 끼얹는 지침’을 내놨는 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코세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민간 주도형으로 바꾼 건 역설적으로 정부가 내린 최고의 선택이 됐습니다만 ‘관제 행사’의 때를 벗기라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코세페의 지향점이 불분명하다’는 조언은 새겨들을 만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주 목적이 소비 진작(중국 광군제)인지, 재고 처리(미국 블프)인지, 외국인 관광객 유치(두바이 쇼핑 페스티벌)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주된 목적에 따라 행사 시기와 기간, 할인 폭 등이 달라져야 할 겁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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