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 문화'는 어떻게 주류로 자리 잡았나

입력 2019-11-09 08:39  

"괜찮은거니 어떻게 지내는거야. 나 없다고 또 울고 그러진 않니." (조성모 'To Heaven')-1998

"아무 때고 네게 전활해 나야하며 말을 꺼내도. 누군지 한 번에 알아낼 너의 단 한 사람." (김경호,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1997

"갈 길이 멀기에 서글픈 나는 지금 맨발의 청춘. 나 하지만 여기서 멈추진 않을 거야 간다 와다다다." (벅, 맨발의 청춘)-1997

1990~2000년대 음악만 24시간 나오는 방송이 있다. SB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온라인 탑골공원'이다. '온라인 탑골공원'은 지난 9월부터 1990~2000년대 방송된 'SBS 인기가요'를 실시간 스트리밍하고 있다. 현재 이 채널의 구독자 수는 18만 명을 넘어섰다.

채널의 인기가 높아지자 여기저기 '탑골'이라는 단어를 붙여 신조어를 만드는 현상도 생겼다. 가수 이정현에게는 '탑골 레이디가가', 백지영에게는 '탑골 청하'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시 그들의 콘셉트가 현재의 레이디가가, 청하의 콘셉트와 비슷하다는 의미다.

1990~2000년대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오래된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숨겨야하는 마이너 문화가 아닌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주류문화로 편입됐다는 분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옛날 것을 즐긴다고 하면 촌스러운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면서 "레트로(복고) 열풍을 타고 1990~2000년대 콘텐츠를 즐기는 세대가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상은 개성과 취향을 중요시하는 2030세대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직장인 한유진 씨(34)는 "최근 정치권의 일련의 사태를 보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면서 "내가 나의 취향을 존중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취향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돌 콘서트를 열심히 다닌다. 이런 취향에 대해 비난받고 싶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취향도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나"라며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하고 개성이 강한 세대"라면서 "본인의 개성 표현을 중요시 여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개성도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1990~2000년대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을 '구시대적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 문화를 향유하는 집단으로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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