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는 '해야 할 일' 제대로 하고 있는가

입력 2019-11-08 17:25   수정 2019-11-09 00:07

임기 반환점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또 ‘공정’을 강조하고 나섰다. 어제 14개 부처 장관 및 주요 사정기관장들과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열고 전관 특혜, 사교육시장 불공정, 채용비리 등의 근절 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반부패 개혁과 공정사회는 우리 정부의 사명”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공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을 비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분기마다 반부패협의회를 열고 공정을 챙기듯이, 추락하는 성장잠재력과 국가적 난제를 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 악화가 웅변하듯, 성과를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경제성장률은 1%대로 주저앉을 판이고, 투자·소비 위축에다 수출도 1년 가까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 기업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탈(脫)한국을 고심하고 있다. 산업벨트에 인접한 지역경제의 몰락을 보면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했지만 결과는 취업포기자, 비정규직의 급증이다. ‘세금 내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부진하자 정부는 재정을 퍼부어 급조한 ‘세금 쓰는’ 일자리로 고용통계를 화장하기에 급급해 한다. 친(親)노조 정책은 노동약자들의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들었고, 상위 10%의 ‘노조 귀족’ 천국이 돼간다. 그럴수록 계층 간 소득격차가 더 벌어지고, 무차별 복지를 펴는데도 복지 사각지대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런 총체적 경제 난맥상의 배경에 ‘방향착오 공약’이 도사리고 있다. 시장에 대한 무지와 편향된 이념에 갇혀, 산업구조 전환과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을 거꾸로 읽어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로제 등 공약을 “예외는 없다”고 밀어붙인 부작용과 대가가 너무도 크다. 기득권을 옹호하고 노동의 다양성을 부인하는 획일적 통제와 간섭은 경제 활력에 족쇄를 채우고, 신산업의 싹까지 자르고 있다. 한국전력과 산업통상자원부 간의 전기료 인상 갈등도 그 본질은 탈원전이란 무리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와서 정부는 글로벌 경기 부진을 탓하지만 세계경제보다 더 빨리 가라앉는 실상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집권여당 대표는 지난 2년 반을 “나라다운 나라,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온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지만 여기에 누가 공감할지 의문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정부의 역할은 경제주체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혁파 등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어야지, 원가·임금·분양가 등 시장가격에 개입하고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규제하는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벌였을 때 어떤 결과를 빚는지는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 숱한 ‘정부 실패’ 사례가 잘 보여준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유례가 없고 가속도까지 붙은 저출산·고령화, 경쟁력을 갉아먹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비효율, 점점 고차방정식이 돼가는 외교·안보, 나라를 두 동강 낼 지경인 사회갈등 등의 국가적 난제가 숱하게 도사리고 있다. 이를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럴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면 남은 2년 반은 더 험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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