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입 연 문무일 "사건의 옳고 그름보다 진영 유·불리만 따지면 안돼"

입력 2019-11-10 13:04   수정 2019-11-10 13:27


문재인 정부 초대 문무일 검찰총장이 “사건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자기 진영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더 우선시하면 안된다”고 밝혔다. 또 ‘참모의 역할’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것이 당장은 불리해도 나중에 역사적 평가를 받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총장(사진·사법연수원 18기)은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한국법학원(원장 권오곤) 주최로 ‘검사로 공직을 마치다’란 주제의 특강을 했다. 지난 7월 24일 퇴임 후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연수 중이던 그는 최근 모교인 고려대로부터 정보보호대학원 디지털포렌식(PC, 휴대폰 분석을 통한 범죄 증거 확보)학과 석좌교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일시 귀국했다. 문 총장은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과장과 과학수사2담당관을 맡으며 검찰 수사에 디지털포렌식을 처음 도입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1일 교수 임명장을 받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문 총장은 조선 말기 당쟁의 역사를 정리한 ‘당의통략’ 내용을 인용하며 “조선말기 당쟁이 심해질때 벌어진 현상은 어떤 사건 진상 즉 옳고 그름 보다 자기 진영에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법조계에선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두고 서초동, 광화문 집회 등으로 격렬해진 좌우대립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수사 내용엔 관심이 없고, 결과(검찰개혁)를 위해서라면 과정에 흠(일가 비리)이 있어도 된다며 조 전 장관을 비호해온 여권 일각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전 총장은 “요즘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문 전 총장은 이날 박정희 정권 당시 문교부 장관과 조선시대 장관급 고관직인 ‘한성판윤’ 권엄의 사례를 들어 권력에 눈치보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참모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반대를 두 번이나 무릅쓰고 고려대와 우석의대 합병을 밀어부친 한 문교부 장관 사례를 들었다. “당시 우석의대가 부도날 상황이었고 고려대는 의대가 없어, 두 대학을 합치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문교부 장관이 제안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집회시위가 많은 대학(고려대)이라며 수차례 거부했다”며 “이 장관은 경질 당할 것을 각오하고 세차례 대통령에 제안해 결국 합병을 관철해냈고, 대통령도 나중에 칭찬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권엄은 조상 묘지를 위해 백성의 땅을 뺏은 당시 임금 주치의의 행패에 대해 왕의 명령을 거스르며 연이어 엄단 조치를 취했다. 그는 “권엄은 목숨을 걸고 왕의 뜻을 어겼지만 몇년 후 왕은 권엄의 판결에 ‘훌륭했다’고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참모는 이런자세로 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선 대통령 측근(조국) 수사를 계기로 여당측으로부터 ‘배신자’로 몰린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원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욕을 먹고 견디는 것도 실력”이라며 “공직자는 늘 비판을 감수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문 전 총장은 “거짓이 사법적 사실로 둔갑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이 전세계적인 추세”라며 “지식인들이 이를 감시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3심제가 정착된 것은 인간의 재판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법률가는 항상 겸손하고 겸허해야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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