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혁신성장이 '공허한 구호'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9-11-11 17:55   수정 2019-11-12 00:09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실망스럽다. 성장은 둔화됐고 분배는 악화됐다. 고용은 양과 질 모두 개악됐고,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할 만큼 재정도 말라가고 있다. 민생은 파탄 지경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어떤 이념에 기반을 두고 어떤 가치를 지향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갈린다. 문재인 정부가 견지하는 ‘국가 개입주의’는 ‘국가는 선하고 전지(全知)하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를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국가가 박애주의의 실천자가 된다면 모두 입법을 통해 특혜를 받으려 할 것이다. 한 손으로 무엇인가를 빼앗아 다른 손으로 나눠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바란 것은 아니었겠지만 국민을 ‘국가에 의존하는 사회적 약자’로 만들었다. 약자로 구성된 사회가 역동적일 수 없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는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경쟁자를 시장에서 축출해달라는 주문과 다름없다.

설계주의에 빠지면 정책은 구두선이 되고 만다. 미증유의 적자국채(발행한도 60조원)를 발행해 513조원에 이르는 초팽창 예산을 편성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예산안이야말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 강한 나라’로 가는 발판”이라고 했다. ‘정신승리법’에 취하지 않고서야, 적자 재정을 꾸리는 것이 ‘강한 경제’로 가는 발판일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마지막 반전을 시도해야 한다. ‘혁신성장’이 진정한 발판이다. 정부는 올 상반기에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3대 국가 중점 육성 산업으로 바이오헬스, 시스템 반도체, 미래차 분야를 선정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등 8개 부처는 합동으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바이오헬스 분야 연구개발(R&D)에 대한 정부 투자를 2025년까지 연간 4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신약 개발 등을 위해 ‘기술 개발, 인허가, 생산, 시장출시’의 전(全) 주기에 걸쳐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정책 방향은 맞다. 관건은 어떻게 혁신전략을 실행할 것인가다.

그러나 최근 국정감사에서 혁신전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 지원 정책이 매년 그 수준에 머물러 신약 개발 투자와 수익 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견인할 장치가 부재(不在)하다는 것이다. 또 국정감사를 통해 제약·바이오 R&D를 이끄는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2018년 정부 지원(922억원)이 전년도(1142억원)보다 20%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제약·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정책기조에 반하는 것이다.

혁신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혁신보상체계’임에도 혁신에 대한 ‘약가정책’이 제외됐다. 정부는 약가보상이 산업육성 정책이기보다는 보상 체계이므로 분리했다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혁신신약 약가우대 제도는 업계에 신약 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정부의 산업 활성화 의지를 보여주는 교두보다.

혁신약가 우대 제도는 통상마찰의 소지가 있다.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 측 문제 제기로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제도’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만족하기 어려운 요건이 다수 신설되면서 국내와 글로벌 기업 모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돼서다. 한·미 양국 모두 혜택을 보지 못하게 하는 옥쇄작전은 문제가 있다. 한·미 양국 정책 실무자 간 정기적 논의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혁신신약에 대해 약가우선 제도 적용이 여의치 않다면 개량신약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 하지만 내년 7월부터 개량신약의 가격우대 제도가 바뀐다. 개량신약 출시 이후 최대 5년이 지나면 개량신약에 대한 가격우대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개량신약은 오리지널 약의 효능을 개선하고 부작용을 줄이거나 복용 편리성을 개선한 약이다. 개량신약은 신약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반면, 개발 비용은 적고 개발 기간도 짧아 제네릭에서 신약 개발로 가는 중간 과정에 있는 우리나라에 적합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개량신약 약가우대 제도 폐지는 혁신신약 개발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고 제약기업의 캐시카우(cash cow)를 죽이는 것이다. 시장과 눈높이를 맞추고 ‘유인설계’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면 혁신은 다시 한번 구두선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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