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가 쓰던 '은빛카드'…적자 탓 역사속으로

입력 2019-11-12 17:09   수정 2019-11-13 11:35


50대 대기업 임원 박병진 씨는 최근 현대카드로부터 ‘다이너스카드를 남은 유효기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직장에 처음 입사한 1990년대 초 이 카드를 발급받았다. 해외 출장을 가면 ‘폼’이 났다. 남들은 여행자수표로 호텔비를 결제할 때 그는 다이너스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보여주고 공항 라운지도 무료로 이용했다. 박씨는 “30여 년 가까이 직장생활하는 동안 계속 써오던 카드인데 서비스를 종료한다니 섭섭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미국 다이너스클럽과 현대카드가 제휴 종료를 선언했다. 다이너스카드가 35년 만에 한국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 최초 신용카드

1950년 출범한 다이너스클럽은 뉴욕 14개 레스토랑을 가맹점으로 모아 음식값을 다음달 결제하게 해주는 회원제 서비스에서 출발했다. 신용카드 서비스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다이너스클럽은 1984년 다이너스클럽코리아를 세워 한국에 진출했다. 초기엔 대기업 임원과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층만 회원으로 받았다. 장지갑에서 ‘은빛 다이너스카드’를 꺼내는 게 부자의 척도로 여겨졌다. 공항 라운지 무료 이용 혜택을 준 것도 다이너스클럽이 처음이다. 국내에선 일반인이 해외여행 가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이후 다이너스클럽코리아는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돼 현대카드의 모태가 됐다. 현대카드는 미국 본사와 새로 제휴 계약을 맺고, 다이너스카드의 명맥만 유지하는 길을 택했다.


혜택 컸지만, 손실도 커져

다이너스카드는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보편화한 2010년 이후 다시 주목받았다. 현대카드가 내놓은 ‘다이너스 마일리지’ 카드는 세계 650개가량의 공항 라운지를 횟수 제한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가족 5명에게도 같은 혜택을 제공했다. 연회비는 5만원. 공항 라운지 요금이 3만원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싼 편이다. 라운지를 두 번만 이용해도 이득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젊은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높은 카드로 평가받기도 했다.

다른 카드사가 실속형 라운지 카드를 내놓으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라운지 혜택만 누리고, 카드는 사용하지 않는 ‘체리피커’ 고객이 늘어나면서 현대카드와 다이너스클럽의 손해폭도 커졌다. 현대카드는 2013년 다이너스 M(포인트형) 카드 발급을 중단한 데 이어 다이너스 마일리지 카드의 가족 혜택도 줄였다. 일부 국내 공항 라운지 이용을 막았고, 지난해 6월부터는 다이너스 마일리지 카드의 신규 발급을 중단했다. 이번에 제휴 연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기존에 발급된 카드의 유효기간이 완전히 끝나는 2024년이 되면 더는 국내에서 다이너스카드를 찾아보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2~3년 새 카드사들은 통신료를 대폭 할인해주거나 항공 마일리지를 많이 쌓아주는 ‘알짜카드’를 줄줄이 단종하고 있다. 정부의 중소·영세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인하 조치로 카드사가 미끼성 상품을 내놓을 여력이 줄었고, 금융당국도 ‘고비용 마케팅’ 자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다이너스클럽의 인지도가 과거보다 많이 떨어져 설령 재출시되더라도 인기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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