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5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초로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11월까지 0%대를 기록 중이다.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에 빠뜨린 디플레이션(deflation)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 경제가 맞닿은 새로운 국면을 진단해본다.[편집자주]
한국경제가 사실상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에 진입했다는 잇단 경고음에 대해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시장팀장은 "저물가 부분이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논의하는 디플레이션과는 아직 괴리가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내놨다.
김완중 팀장은 <한경닷컴>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에 당장 디플레이션이 올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논의하는 디플레이션이라는 건 수요 부진에 기반한 이슈가 대부분인데 지금은 공급적인 측면에서 더 문제가 많아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서 국내외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좋지 못한 시기로 분석되고 있는데 대해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소규모 개방경제국이라는 한계점 때문에 글로벌 교역이 둔화되는 국면에서는 성장세 또한 둔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국면에서 단기간 내 변곡점이 등장해 상승세로 돌아서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 팀장은 무엇보다 한국경제의 기초 체력이 지속해서 저하되고 있는 점을 걱정했다. 구조적으로 성장 모멘텀(동력)을 찾지 못하는 모습인 데다 대외 국면까지도 한국에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면서 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지금처럼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고 민간 소비도 더 나빠지면 디플레이션이 안 온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디플레이션을 재촉하는 요인으로 고령화와 가계부채 문제를 꼬집어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의 정책 자체가 복지정책 강화에 방점이 있다보니 물가가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며 "가령 공공요금을 올리면 물가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현 정부가 억누르고 있어서 물가지표 등이 방향을 틀 여지가 적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진 주택가격의 상승압력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임계점에 도달한 데다 고령자 비중이 커지고 현금을 창출하는 과정으로 주택을 매도하기 시작하면서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정리) 과정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오히려 디플레이션 진입을 재촉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선 민간 수요를 증작시켜줄 수 있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김 팀장은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소비와 투자를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게 현실"이라며 "정부가 추진했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효과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런 정책이 유효소비를 늘려가며 물가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김 팀장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 가계의 소득을 늘리고 기업의 고용창출 선순환 과정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여지지만 개방경제 하에서는 쉽게 작동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오히려 그런 정책이 조금 후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복지정책 이슈는 각 정권마다 철학이 있지만 어느 정도의 복지정책을 펼칠 것인가에 따라 후속세대에게도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팀장은 지금과 같은 저물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4차산업혁명 육성하는 일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적극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혁신성장 동력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존의 제도권과의 마찰로 인해 추진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의 기득권 계층과의 이해상충 문제를 비롯해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 등에 대한 해결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간부분에서 투자를 더 촉발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강구돼야 한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게 정부가 적극적인 세제혜택 또는 제도완화 등을 통해 독려해야 민간부분 투자 늘어나면서 저물가 또는 디플레이션 압력 등을 상쇄할 수 있는 선순환 과정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 팀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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