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행정절차를 줄여 기업 부담을 다소나마 덜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지만, 화학기업의 현장애로 해소 방안으로 보기엔 크게 미흡하다. 기업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 온 화학물질 등록의무 부과 기준(100㎏) 상향 등 핵심 규제는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과도한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풀어 소재·부품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제대로 실현될지 의문이다.
이번에 발표한 행정심사 기간 단축과 대표·임원 변경 신고 간소화는 오래전에 시정했어야 할 행정편의주의적 규제에 지나지 않는다. 관련 법을 제정할 때 처음부터 환경부(위해관리계획서)와 고용노동부(공정안전보고서) 등 부처마다 따로 심사받도록 한 것을 충분히 통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재·부품 기업들이 지금 가장 큰 애로로 꼽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올해 말 유예기간이 끝나는 ‘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 관련 규제들이다. 기업들은 화평법에 따라 연간 0.1t 이상 제조·수입 시 신규 화학물질을 등록해야 한다. 규제 강도가 미국(10t)에 비해 100배, 환경정당인 녹색당의 입김이 센 유럽연합(1t)에 비해서도 10배나 세다.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화관법은 당장 ‘발등의 불’이다. 화관법이 규정한 유해물질 안전기준은 413개로 5년 새 5배 이상 늘었다. 저압가스 배관검사를 의무화해 사소한 위반이 적발돼도 반도체·석유화학 기업은 1년 넘게 공장을 세워야 할 처지에 몰릴 판이다. 과도한 안전기준에 따른 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중소기업들은 경영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유예기간을 5년이나 줬다”며 “더 이상 대폭적인 규제 완화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애초부터 관련 규제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기업들이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화학물질 관리가 중요하다고 해서 수용성에 눈감은 환경원리주의적 규제를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현실을 무시한 교조적 환경운동이 온전히 정책으로 수용돼 기업들에 ‘묻지마 고문’을 가하는 정부가 한국 말고 어디에 있는가. 그래놓고서는 소재·부품 분야에서 극일(克日)을 이루겠단다. 이런 코미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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