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중단된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비핵화 협상을 위한 한미연합훈련 축소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북한 또한 실무협상 의향을 내비친 까닭이다. 다만 북한은 미국이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14일 발표한 담화에서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며 "조미(북미)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는 미국 측의 긍정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앞서 에스퍼 장관은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과정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외교적 필요성에 따라 훈련을 더 많거나 더 적게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한미연합공중훈련을 비난한 직후 나온 발언인 탓에 훈련을 축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 한미 군 당국은 15일 SCM에서 연합공중훈련 조정 문제를 최종적으로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담화가 보도되기 직전엔 북미 실무협상 북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담화를 발표했다. 김 대사는 최근 미국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게 다음 달 다시 협상하자는 제안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만날 의향이 있다는 전제를 뒀다.
김 대사는 "비건은 제3국을 통해 조미(북미) 쌍방이 12월 중에 다시 만나 협상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며 "우리는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면 임의의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미국과 마주 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미국이 지난 10월 초 스웨덴에서 진행된 조미실무협상 때처럼 연말 시한부를 무난히 넘기기 위해 우리를 얼려보려는(달래보려는) 불순한 목적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다면 그런 협상에는 의욕이 없다"며 "우리의 요구사항들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들이 선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명백히 밝힌 것만큼 이제는 미국 측이 그에 대한 대답과 해결책을 내놓을 차례"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미국이 우리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정세변화에 따라 순간에 휴지장으로 변할 수 있는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를 협상에로 유도할 수 있다고 타산한다면 문제해결은 언제 가도 가망이 없다"며 "미국이 아직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며 미국의 대화 제기가 조미 사이의 만남이나 연출하여 시간 벌이를 해보려는 술책으로밖에 달리 판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소 부정적인 어휘가 섞여 있지만 곧바로 나온 김 위원장의 담화를 감안하면 한미연합훈련 축소 움직임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김 대사는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직후인 지난달 6일 성명에서 "미국은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합동군사연습마저 하나둘 재개했다"면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돼야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지목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바로 한미연합훈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훈련 축소가 '근본적 해결책'인 셈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원론적인 입장을 취했다. 미 국무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관계 전환과 항구적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라는 싱가포르 약속을 진전시키는 데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한미연합공중훈련에 대한 북한의 강력 비난에 대해 내놨던 입장과 결이 같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주장대로 비건 대표가 12월 협상을 제안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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