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양국은 지소미아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한·일 간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지소미아 종료일까지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다만 한반도 지역 안보 공조를 위해 꾸준하게 지소미아 필요성을 강조해 온 미국의 막판 중재가 지소미아 존폐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평행선만 달린 한·일 국방
지소미아 종료 전 예정된 한·일 간 마지막 고위급 공식 면담이었던 한·일 국방장관 회담은 기대와 달리 성과 없이 끝났다. 양국 국방장관은 이날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만나 회담했지만 지소미아 문제와 관련해 기존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회담 종료 후 기자간담회에서 “(지소미아와 관련해) 원론적인 수준에서 얘기가 됐다”며 “지소미아 문제는 국방 분야 얘기보다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 많으니 외교적으로 잘 풀릴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적극 주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는 지소미아를 계속해서 유지해나가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종료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이번 회담에서 일본의 태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날 오후 열린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장관들은 3국 안보협력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은 지소미아 필요성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아직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폐기에 구체적인 진전을 보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3국 간 방위 협력을 증진하고 지역 평화를 유지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日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는 별개”
지소미아 종료 방침을 굳힌 한국에 일본 정부도 강하게 맞서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가 지소미아 연장을 위해 수출규제를 철회하라는 한국 측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같은 입장을 미국 정부에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가 최근 잇따라 열린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와 한·미 간 회담 결과 등을 토대로 지소미아 관련 입장을 정리했다는 게 이 보도의 핵심이다.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는 도쿄에서 열렸던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다키자키 시게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간 접촉을, 한·미 간 회담은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문재인 대통령 예방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에스퍼 장관을 만나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와 지소미아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일본 측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고 미국의 이해도 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막판 중재 이뤄지나
한·일 양국이 지소미아 문제를 놓고 첨예한 의견 차를 보이면서 지소미아가 예정된 수순대로 종료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물밑에서 가동되던 실무급 외교채널도 지난주 양국 국장급 회담을 끝으로 중단됐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미 종료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이상 실무급 회담보다는 고위급 간 톱다운식 해법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미국의 막판 중재가 지소미아 문제 해결의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중순 비공개로 미국을 방문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실장이 오브라이언 보좌관과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했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지소미아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의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호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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