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을 모아 함께 제품을 만들어 팔면 가격 결정 시 ‘담합’으로 걸린다. 대기업 등에 비해 자본과 인력 면에서 열위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을 매개로 다양한 공동사업을 하려고 해도 사업자 간 공동행위를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계가 그동안 중기협동조합 공동사업에 ‘부당 공동행위(담합)’ 적용을 배제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해 온 이유다. 2016년부터 세 번의 입법 시도 끝에 올해 8월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마침내 공포됐다. 내년 2월 2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 법률안은 손금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전남 나주화순)과 김성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노원병)이 각각 발의한 내용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통합한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시행되는 공동 구매·판매, 물류, 연구개발 등 다양한 공동사업에 대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른 부당한 공동행위(카르텔·담합)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중기협동조합이 주체가 돼 법령에 따라 시행하는 공동사업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고시하는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공정거래법(제19조 제1항, 제26조 제1항 제1호)에서 규정하는 사업자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 관련 금지 조문의 적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그동안 정치권 여당 및 야당과 국회의장, 중기부 장관, 청와대 정책실장 등과의 여러 간담회, 중소기업인대회 등에서 법 개정의 당위성과 중요성을 강조해왔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계는 중기협동조합을 통해 중소기업들끼리 공동사업을 활성화함으로써 대·중소기업 간 유효한 경쟁이 촉진되고 건강한 시장질서가 구축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중소기업들이 협업과 공동사업을 통해 스스로 경쟁력을 보완하고 교섭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정거래법에서도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과 타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 일정한 조합의 행위에 대해선 공정거래법 적용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제19조 제2항, 제58조, 제60조)이 있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실제로 중기협동조합에 대해 예외를 인가한 사례는 드물고 판단 기준도 모호했다고 중기중앙회 측은 말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에서도 중소기업 등에 대한 경쟁법 적용 예외 조항이 있는 점을 벤치마킹했다고 중앙회는 덧붙였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음성적으로 추진하는 카르텔(담합)은 철저히 퇴출해야 하지만 그동안 합법적으로 하는 중기협동조합의 공동사업도 공정거래법에서 사업자단체의 공동행위를 폭넓게 제한함에 따라 위축돼 온 측면이 있다”며 “다행히 중기부와 공정위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앞장서 준 덕분에 중소기업계가 40여 년간 염원했던 법률 개정을 이뤘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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