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약 있어요?"…불법약국 된 단톡방

입력 2019-11-21 15:52   수정 2019-11-22 00:31

태국, 베트남을 비롯한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불법유통이 활개를 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모니터링을 하며 단속하고는 있지만 소셜커머스 사이트와 카카오톡 대화방 등 유통 경로가 다양해져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직구 사이트·SNS 등에서 손쉽게 구입

“피부과 망하게 하는 신의 연고.” 한 태국 구매대행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레틴A’ 크림에 대한 설명이다. 해당 제품은 얼굴을 붉게 만들거나 화끈거리게 할 수 있는 ‘트레티노인’이 들어간 전문의약품이지만 게시글엔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같은 사이트엔 발기부전 치료제로 알려진 전문의약품 ‘비아그라’의 제네릭(복제약)도 올라와 있다. 이 약품도 마찬가지로 “재구매가 가장 많은 상품”이라는 내용 외엔 별다른 설명이 없다. 클릭 몇 번이면 쇼핑몰에서 식품을 구매하듯 처방전 없이도 해당 약품을 구매할 수 있다.

현행 약사법에선 약국이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판매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구매대행업체는 일부 전문의약품이 미국, 태국 등 일부 국가에서 의사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린다. 한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여드름 치료용 연고를 3개월마다 꾸준히 사고 있다는 김모씨(27)는 “국내에선 처방전을 얻기 위해 진단도 따로 받아야 해 연고 하나를 살 때마다 5만원씩 들어가지만 구매대행업체를 이용하면 반값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에 해외에서 의약품을 구매해 판매하는 방식이 인기를 끌자 소셜커머스 사이트에도 전문의약품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피부 미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레틴A나 ‘디페린’ 등은 ‘쿠팡’, ‘옥션’ 등의 사이트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심지어 “임신중절약을 대신 구매해 준다”며 온라인 메신저·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아이디를 올려놓은 판매자도 있다. 네이버 중고거래 카페인 ‘중고나라’에도 전문의약품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매달 10여 건씩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허위 처방전, 제품포장 바꿔 ‘통관’

전문의약품의 온라인 판매가 논란이 되자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7월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한 의약품 판매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였다. 당시 한국소비자원은 “‘해외 직구’ 전문의약품은 품질과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식약처에는 전문의약품 판매 사이트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차단을, 관세청에는 전문의약품 통관 관련 규정 개선 등을 요청했다. 관세청은 자가사용 목적이라 하더라도 전문의약품 통관 시 처방전 동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업체가 허위 처방전을 동봉하거나 다른 제품으로 포장을 바꾸는 ‘통갈이’를 하며 단속망을 피해가고 있다.

식약처도 전문의약품의 불법 판매를 막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모니터링 직원 30여 명이 낙태약, 발기부전 치료제 등 약품 종류별로 집중 단속을 하고 있다”면서도 “온라인 특성상 판매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어려워 해당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더라도 또 다른 사이트나 SNS 계정을 생성하는 식으로 영업이 이뤄져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산 의약품을 구매·반입할 수 없도록 한 약사법 개정안은 지난해 5월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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