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이 모(24·여) 씨는 지난달 대구의 메카 동성로를 걷던 중 갑자기 한 남성이 팔을 잡아끌어 넘어질 뻔했다. 이 씨의 팔을 잡아끈 사람은 다름 아닌 휴대폰 대리점 직원. 이 직원은 이 씨에게 설문 조사 하나만 해달라면서 강제로 대리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이어진 성희롱성 발언들. 해당 직원은 이 씨에게 '남자친구는 있냐' '오늘 동성로 왔는데 같이 놀자'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기분이 상한 이 씨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 지난 9일 서울 은평구 연신내 거리에서 친구와 걷고 있던 김 모(28·여) 씨. 이 씨의 경우처럼 누군가 와서 팔을 잡아끌지는 않았지만 말끔한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이 갑자기 말을 걸기 시작했다. 번호를 알려달라는 의사표시를 하며 계속 말을 걸던 남성. 지속되는 구애에도 김 씨가 거절하자 이 남성은 바로 자리를 뜨고 휴대폰 대리점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휴대폰 대리점 직원이었던 것.
# 지난 17일 인천 부평구 인근을 홀로 걷던 윤 모(33·여) 씨 앞을 두 명의 남성이 막아섰다. 겁에 질린 윤 씨에게 폭포수 같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첫 시작은 휴대폰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번호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에 의외로 빠르게 포기를 한 이 두 남성. 윤 씨는 늦은 저녁이었던 만큼 큰일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휴대폰 대리점 직원들의 도 넘은 호객행위가 여성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의 호객행위가 단순 호객행위를 넘어 성희롱성 발언으로도 이어지고 있어 시민들의 불편함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 2건에 불과했던 휴대폰 대리점 호객행위 관련 민원이 2016년 10건 2017년 14건 지난해 19건으로 증가세를 나타냈다. 올해의 경우 지난 상반기에만 7건이 접수됐다.
이와 함께 지난 상반기 경찰에도 총 42건의 휴대폰 대리점 호객행위 관련 신고 접수가 들어왔다. 대다수 신고자는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러한 휴대폰 대리점 직원들을 '폰팔이'라고 비하하며 '폰팔이 포비아' 현상까지 일고 있다.
현행법상 길거리 호객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그러나 '폰팔이'들의 행태는 단순 호객행위를 넘어 성희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와 일선 경찰들은 이미 유럽 등지에서 호객행위를 빙자한 성희롱은 물론 길거리 단순 성희롱도 현행범으로 처벌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해 8월 프랑스에서는 '플러팅' '캣콜링'으로도 불리는 길거리 성희롱 행위 처벌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이어 지난해 9월 첫 처벌 대상자가 나왔다.
서승희 사이버성폭력센터대응센터 대표는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또 다른 성폭력이 호객행위를 빙자한 성희롱성 행위"라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젠더감수성 부족 문제가 여기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에서는 이미 범죄인만큼 우리 역시 처벌 조항을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이를 두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아직은 국내에 많다"면서 "현 상황 개선을 위한 제도화 문제와 함께 성희롱 가해자들을 향한 가감 없는 비판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접수 과정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갖고 문제제기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만 아직 현행법상 제지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직장 내 성희롱 등 직접적인 관계에서 이뤄지는 성희롱도 형사처벌이 잘 안 이뤄지기에 '캣콜링' 같은 범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부분이 많다"면서 "과하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제도화를 통해 가이드라인 등이 생겨야 일선 경찰들도 대처가 용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경찰 상부에서도 젠더감수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어 우리도 이 같은 사건에 많은 신경을 쏟게 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호객행위를 빙자한 '캣콜링'은 단순 경범죄로밖에 처리를 못 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체 접촉이라도 있다면 처벌을 해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사회 문제로 대두가 되고 있는 만큼 유럽 사례 같은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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