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은 컨설턴트 피하고 싶다"

입력 2019-11-22 17:29   수정 2019-11-23 01:12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 A대표는 컨설팅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10여 년 전 이 회사에 들어온 컨설턴트가 글로벌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가 회사 재무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구조조정까지 해야 했다. A대표는 “뼈저린 실패 사례가 뇌리에 박혀서인지 웬만해선 컨설팅 회사와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4대 그룹 계열사의 B대표는 아예 사내에 ‘컨설팅팀’을 만들었다. 과장~차장급 직원 중 10년 뒤 임원이 될 만한 인재를 뽑아 회사의 미래를 진단하고 방향성을 정하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린 것. 컨설팅 업체를 활용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컨설팅사에서 온 사람들은 결국 우리 직원들을 인터뷰해 문제점을 파악한다”며 “직원들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 데다 직원들만큼 업의 본질과 문제점을 잘 파악하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오너가 있는 회사의 전문경영인은 통상 컨설팅 업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컨설팅업계의 설명이다. 성공보수도 마찬가지다. 성공보수는 주로 원가 절감, 영업 개선 등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받을 수 있어서다. 한 중소 컨설팅사 대표는 “전문경영인들은 경영진단을 맡은 컨설턴트들이 자신들이 지금까지 하지 못한 방식으로 원가 절감이나 실적 개선에 성공하면 좋아하지 않는다”며 “회사를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오너에게 심어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너의 신임을 받은 컨설턴트가 기업으로 옮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21일 강희석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를 이마트 대표로 선임했다. 그는 10년째 이마트 전략 컨설팅을 맡는 등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지난해 홍범식 베인앤드컴퍼니 대표를 (주)LG 경영전략팀장(사장)으로 영입했다.

해외에서는 전문경영인이 한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컨설팅을 활용한다.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좋은 성과만 내면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 글로벌 컨설팅사 대표는 “전문경영인의 운명이 오너의 손에 달려 있는 한국 기업에서는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힘들다”며 “해외의 전문경영인들은 실적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성과보수 컨설팅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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