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과 펀드, 같은 창구에서 팔지 말라니…"

입력 2019-11-25 17:13   수정 2019-11-26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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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파는 상품과 진열 위치까지 정부가 규제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번 파생결합증권(DLS) 대책이 딱 그렇습니다.”

25일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창구 영업 방식까지 정부가 하나로 정해놓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4일 금융당국이 내놓은 DLS 사태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반응이다. 여기에는 은행의 예·적금 창구와 펀드 창구를 분리한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영업점 창구에 방문한 고객에게 투자 상품을 무리하게 판매하는 일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은행권 의견을 청취한 뒤 이르면 다음달부터 대책을 시행할 방침이다.

취지와 달리 영업점에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은행들이 지금껏 지향해온 창구 전략과 상충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신한·국민·기업 등 대형 은행은 최근 고객 편의를 높이기 위해 ‘원스톱 창구’를 운영해 왔다. 원스톱 창구는 고객이 여·수신 등 모든 은행 업무를 창구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과거에는 대부분 은행에서 여신, 수신, 외환 등 업무별로 인력을 나눠 각기 다른 창구에 배정해 왔다. 최근에는 기업·개인 등 고객군만 크게 나누고 세부 업무는 창구를 분리하지 않는 은행이 많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업무에 따라 창구를 이동하는 번거로움 없이 한 곳에서 편리하게 처리하도록 한 것”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도 특정 창구에 고객이 쏠리거나 일부 직원에게만 업무가 몰리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은행들은 ‘창구 전략’을 세우기 어렵게 됐다. 원스톱 창구를 운영 중인 한 은행 관계자는 “예금·대부계로 창구를 나누던 과거보다 고객에게 더 불편한 창구 형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한 업무를 본 뒤 번호표를 다시 뽑고 기다려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원스톱 창구를 운영하지 않는 은행도 지점마다 고객 특성과 동선에 맞춰 다른 방식으로 창구를 배치해 왔다”며 “이를 당국이 정해준 대로 나누라는 건 영업점 전략 자체를 무력화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수영을 하되 바다에서 수영하지 말고 실내에서 (먼저) 수영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수영 자체를 해보기도 어렵다는 게 은행권의 항변이다. 팔 수 있는 상품과 영업점 창구 전략 등 모든 분야에 자율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무릎까지 오는 유아용 수영장에 풀어놓고 바다 수영 실력을 마음껏 키워보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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